
2월8일(한국 시각)~24일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러시아 소치의 ‘로라 크로스컨트리 스키 앤 바이애슬론 센터’ 건물 화장실에 변기 두개가 나란히 설치돼있다. 2013. 1. 23. 연합뉴스
변기 사이 칸막이 없는 ‘이상한 화장실’ 상상 이상의 반응 이어져
[지구촌 화제]
영국 <비비시>(BBC) 방송의 모스크바 특파원 스티브 로젠버그는 얼마 전 소치 겨울올림픽 준비 현장을 취재하러 갔다가 ‘이상한 화장실’을 목격했다. 새로 지은 ‘로라 크로스컨트리 스키 앤 바이애슬론 센터’ 건물 화장실에 변기 두개가 나란히 설치돼 있었던 것이다. 두 변기 사이엔 칸막이가 없었고, 화장지는 한쪽 변기에 앉아서만 손이 닿는 위치에 한개만 비치돼 있었다. ‘도대체 왜 변기가 두개란 말인가. 어느 변기에 앉으란 말인가. 혹시 2인용 화장실인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로젠버그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올렸고, 전세계 소셜미디어와 블로그를 통해 순식간에 큰 화제를 모았다.
러시아에서도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방송되면서 상상 이상의 압도적인 반응이 뒤따랐다. 특히 블로그와 소셜미디어에 달린 댓글에는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반영하는 다양한 ‘풍자’가 줄을 이었다.
로젠버그 기자는 23일(현지 시각) <비비시> 온라인판에 러시아인들이 올린 풍자성 댓글과 자신의 감회를 적은 사진 후기를 올렸다. 혹자는 ‘두개의 변기’를 러시아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을 상징하는 이미지로 읽었다. 한 저명 반정부 활동가는 “이게 우리에게서 받아간 50억달러(소치올림픽 준비 예산)”라고 일침을 놨다. 쓸모없이 변기를 두개나 설치했거나, 칸막이 만들 예산을 가로챘다는 ‘중의’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두개의 변기를 두개의 지도자로 해석하는 여론도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대선 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서로 대통령과 총리 자리를 맞바꿔 야권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한 블로거는 로젠버그의 사진에 푸틴과 메드베데프의 초상화 그림을 넣은 새로운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변기) 하나는 푸틴용, 다른 하나는 메드베데프”라는 게 블로거의 설명이었다.
소치 올림픽을 둘러싼 주요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의 동성애 금지법과 정보 당국의 감시 활동도 도마에 올랐다. 블로그에 올라온 댓글 중에는 “조심하라. 이것은 게이 프로파간다(선전)”라는 풍자성 경고도 있었다. “변기 하나는 선수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보호하는 정보요원용”이라는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두개의 변기를 통해 러시아의 공동체 문화를 추억하는 긍정적인 해석들도 있었다. “과거 러시아 일부 지역의 유치원과 학교에서는 칸막이 없는 공동 화장실이 흔했다”고 로젠버그는 설명했다. 일부에선 소치올림픽의 메시지이기도 한 “여러분, 모두 친구가 됩시다!”라는 의미로 풀이하기도 했다.
로젠버그는 기사 말미에 “나는 나란히 놓인 변기에 숨겨진 진짜 의미를 아직도 모른다”고 고백했다. ‘하나는 변기, 하나는 비데’라는 설이 있지만 진실은 모른다는 설명이다. 로젠버그는 소치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와 소치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만났으나 그 역시 “그건 바이(두개의)애슬론(운동경기)이네요”라고 큰 소리로 웃을 뿐이었다. 로젠버그는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웃음과 풍자를 잃지 않는 러시아인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의미를 덧붙였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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