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20살 여성이 다른 부족 남성과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마을 재판을 거쳐 공개적인 장소에서 10여명한테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처벌을 받은 뒤 중태에 빠져 분노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인도는 지난 2012년 여대생이 버스 안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끝에 숨지는 등 여성에 대한 심각한 성폭력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비비시>(BBC) 등은 23일 인도 서벵골주 비르붐의 산탈 부족 마을에서 지난 20일 밤에 이 마을 출신 여성이 다른 마을 남성과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마을 재판에 끌려나온 뒤 남성과 함께 5만루피(약 86만7000원)가량의 벌금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여성의 가족들이 벌금 낼 돈을 구하지 못하자 “마을 사람 누구든 이 여성한테 재미를 봐도 좋다”는 마을 수장의 결정에 따라 13~14명의 남자들한테 공개적으로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고 <비비시>는 덧붙였다. 이 마을은 콜카타에서 193㎞가량 떨어진 곳으로 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하위층에 속하는 부족이 사는 지역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학교도 없는 소외된 곳이다. 이 마을은 자기 부족 여성이 다른 부족 남성과 교제하거나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은 다른 마을 남성과 5년간 연애를 한 사이로 이날 남성이 청혼을 하려고 이 마을에 왔다. 하지만 이 연인들이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본 같은 부족 주민이 이런 사실을 마을 수장에게 알렸고, 연인들은 포박당한 채 마을 재판에 끌려온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 일간지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여성의 가족들이 돈을 구할 시한을 단 하룻밤도 받지 못했다”면서 “재판이 열린 날 밤에 마을 오두막에 놓인 대나무 단상 위에 여성을 올려놓고 수십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랜 시간 동안 집단 성폭행을 반복했다”고 전했다. 이후 여성은 많은 피를 흘리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채 방치되다가 가족들이 22일 밤에서야 다른 지역 병원으로 이 여성을 데려가면서 사건이 알려졌다. 이 마을은 행정 당국보다는 관습법의 지배를 주로 받는 지역인데, 2010년에도 10대 소녀가 다른 부족 남성과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발가벗은 채 마을 사람들 앞을 지나며 누구든 그를 추행하도록 허용하는 처벌을 했던 전력이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경찰은 일단 마을 수장을 포함해 13명을 체포해 구금한 상태다. 하지만 마을에선 오히려 피해자 가족들이 다시는 마을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의 야만스럽고 경악할 만한 정황이 알려지면서 인도 전역에서 분노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건 초기에 경찰과 검찰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던 정황도 드러나면서 비난은 더 커지고 있다. 인도는 2012년 여대생 버스 집단 성폭행 사망 사건을 계기로 성폭행에 대한 처벌 규정이 강화됐으나 현실적으로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황이다. 경찰도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도 집단 성폭행을 당한 10대 소녀가 경찰에 신고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성폭행을 당했으며, 신고를 취하하도록 협박을 받다가 가해자들이 소녀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붙여 살해한 사례가 있었다. <가디언>은 이와 관련해 “인도의 성평등 불균형, 카스트 제도, 무심한 정책 당국, 비효율적인 사법제도, 굳건한 봉건 문화 등을 이런 사건의 배경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짚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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