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수방출·기름오염 책임’ 셰브론에
미 법원 “에콰도르 판사들 뇌물 받아
95억달러 배상판결 취소” 승소 판결
원주민들 20년 법정투쟁 좌초 위기
미 법원 “에콰도르 판사들 뇌물 받아
95억달러 배상판결 취소” 승소 판결
원주민들 20년 법정투쟁 좌초 위기
아마존의 ‘검은 눈물’은 언제 멈출까.
아마존 환경오염 책임을 물으며 미국 석유 메이저 셰브론에 맞서온 에콰도르 원주민의 20년 법정투쟁이 좌초 위기에 빠졌다. 원주민의 변호인단이 에콰도르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전문가와 판사들한테 뇌물을 줬다는 미국 법원의 판결 때문이다. 에콰도르 법원은 셰브론의 유전 개발로 아마존 열대우림이 오염됐다며 2011~2013년 진행된 1~3심 재판에서 각각 86억달러, 190억달러, 95억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미국 뉴욕 연방지방법원은 4일(현지시각) 아마존 원주민 변호인단이 뇌물을 써 에콰도르 법원에서 승소했다며 이 판결을 취소해달라고 셰브론이 제기한 소송에서 셰브론의 손을 들어줬다고 영국 <비비시>(BBC)가 보도했다. 원주민 변호인단은 즉각 항소할 뜻을 밝혔다.
루이스 캐플런 뉴욕 연방지법 판사는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며 원주민 변호인단이 재판을 위해 30만달러를 불법 동원했다고 판결했다. 캐플런 판사는 지난 2011년 에콰도르 1심 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리자 셰브론이 에콰도르 영토 밖에서 배상 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낸 소송에서도 셰브런 편을 들어준 바 있다. 하지만 미국 항소법원과 대법원은 미국이 에콰도르의 법 집행을 막을 권리가 없다고 판단해 캐플런의 판결을 뒤집었다.
이번에 셰브론이 이긴 소송은 아마존 열대우림 파괴에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아니라, 변호인단의 ‘도덕성’을 겨눈 것이다. 셰브론은 에콰도르 1심 판결이 나오기 직전인 2011년 2월 뉴욕 법원에 ‘조직범죄 단속법’(리코법)을 적용해 원주민 변호인단을 처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셰브론은 환경오염 정도를 조사한 환경컨설팅회사 직원들, 원주민 재판 진행을 위한 모금 후원자, 이 사건을 맡았던 판사 등을 증인으로 채택해 변호인단이 피해 규모를 부풀리고 자금 모금 과정에서 사기와 불법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리코법은 범죄 혐의자 강제 소환, 재산 몰수 등 초강경 규정을 담은 범죄조직 소탕법이다. 이 때문에 셰브론이 피해자를 되레 조직범죄를 저지르는 흉악범으로 몰고 있다는 비판이 거셌다.
2001년 셰브론에 합병된 텍사코는 1964~1992년 에콰도르 북동부의 라고아그리오 지역에서 원유 채굴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유독성 폐수 680억ℓ를 그냥 버렸고, 1700만갤런의 원유를 유출했다. 환경단체인 ‘아마존 워치’는 오염된 강물과 토양 탓에 이 지역 원주민들이 암 발병, 기형아 출산, 피부·호흡기 질환 등에 시달린다고 보고했으나 셰브론은 이미 오염물질을 제거했다고 버텼다. 5개 부족으로 구성된 3만여명의 원주민은 1993년 텍사코가 있는 뉴욕법원에 집단소송을 제기했으나 이후 10년 동안 지루한 법정 공방이 계속됐다. 2002년 뉴욕법원이 에콰도르에서 이 사건을 다뤄야 한다고 결정해 주민들이 2003년 에콰도르 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아마존 워치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에콰도르에서 실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선 전혀 관련이 없다”며 “오늘의 판결은 셰브론이 에콰도르인들과 그 지지자들을 녹초로 만들기 위해 60개의 법률회사와 수천여명의 법률 전문가들을 이용해 어떻게 횡포를 부리는지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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