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정 과정. 인터넷 화면 캡쳐
제3자 정자 제공으로 출생한
일 40대 의사 ‘알 권리’ 주장
‘정자 제공자 익명 원칙’ 충돌
일 40대 의사 ‘알 권리’ 주장
‘정자 제공자 익명 원칙’ 충돌
[지구촌 화제]
일본 요코하마시의 의사 가토 히데아키(40)는 2002년 12월 혈액형 검사를 했다가 아버지와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다. 어머니는 자신이 제3자 정자 제공에 의한 인공수정(AID)으로 태어났다는, 그때까지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때부터 그는 정체성 혼란에 시달렸다. 유전자를 물려준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부모의 불임치료를 담당했던 게이오대학병원의 담당 의사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후임인 요시무라 야스노리 교수도 3월 말이면 퇴직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더욱 안절부절했다. 고심하던 그는 지난 7일 “내게 유전자를 물려준 아버지를 알고 싶다”고, 병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26일 <마이니치신문> 보도를 보면, 병원의 회답시한인 25일 요시무라 교수가 가토를 만났다. 요시무라는 “진료 기록은 20년이 지난 모두 폐기했다”고 말했다. 요시무라는 “진료 기록이 남아있다고 해도 알려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제공자를 익명으로 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3자의 난자나 정자를 제공받는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을 통한 출산에서 어느 정도 예고됐던 문제가 당사자들이 성인이 되면서 돌출되고 있다. 자신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과 이 제도의 ‘정자 제공자 익명 원칙’이 결국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 중 한쪽과 혈연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끝내 잘 숨겨지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까닭이다.
일본에서는 제3자 남성의 정자 제공에 의한 출산이 1949년 시작돼 지금까지 1만5000여명 가량이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90년대 들어서는 친부의 정자를 체취해 체외에서 친모의 난자에 주입해 수정란을 만드는 시술법이 개발돼 제3자의 정자 제공을 통한 출산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제3자에 의한 난자 제공 출산이 늘어나고 있어, 부모중 한쪽과 혈연관계가 없는 자녀의 출산은 계속되고 있다.
가토는 “자식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 권리가 있다는 점을 법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수정착상학회 회장을 지낸 우쓰노미야 다카후미는 지난해 비배우자간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5명에 대한 심층 조사 결과 보고에서 조사 대상 5명 모두가 사실을 알게 된 직후나 지금이나 “좀 더 빨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요시무라 교수는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출산이 도입될 무렵에는 부모가 자식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여겨졌다”며 “출생에 대해 알 자식의 권리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비배우자간 인공수정 출산은 계속해나가기 어렵다”고 <마이니치신문>에 말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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