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파 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당수가 25일 낭테르의 당사에서 유럽의회 선거 결과 국민전선이 25% 득표로 창당 이래 최다 득표를 했다는 결과를 듣고 환호하고 있다.
의회선거, 반 EU 극우정당 돌풍
경기침체 장기화·통합 피로감 원인
중도정치 흔들려 갈등 극단화 예고
각국 선거 영향땐 이념갈등 불보듯
경기침체 장기화·통합 피로감 원인
중도정치 흔들려 갈등 극단화 예고
각국 선거 영향땐 이념갈등 불보듯
“유럽연합(EU) 회의론이라는 지진이 유럽의회 선거를 뒤흔들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22~25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 대해 내린 평가다. 경제 전문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의 평가도 다르지 않았다. 신문은 “유럽연합 회의론이 브뤼셀에 돌풍을 일으켰다”고 총평했다. 브뤼셀엔 유럽의회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자리잡고 있다.
이런 평가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를 틀지우는 핵심적 특징이 ‘반유럽연합’을 앞세운 극우정당의 약진임을 보여준다. 배경 또한 간명하다. 유로존 재정위기가 불러온 장기 경기침체를 둘러싸고 드러난 유럽연합과 각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불만이 유럽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유로존 위기 극복 과정에서 유럽연합이 위기에 빠진 국가들에 과도한 긴축을 요구하는 등 지나친 개입으로 경기회복을 저해했다는 불만이 깔려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반유럽연합 정서가 확산한 바탕엔 사상 최고 수준의 실업률이 깔려 있다고 짚었다.
유럽통합의 피로감에 기반을 둔 반유럽연합 성향 정당들의 부상은 중도 좌·우파가 주도해온 유럽 정치를 극단화하고, 유럽통합의 가치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유럽의회 내 반유럽연합 세력이 크게 확장됨에 따라 유럽연합이 야심차게 추진해온 은행연합 등의 통합 경제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유럽연합은 금융위기 재발을 방지하고 금융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통합 금융감독 체제와 부실은행 정리 절차 확립을 추진해왔다.
유럽연합의 이민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 극우정당들은 이번 선거 유세에서 외국의 값싼 노동력 유입이 자국민의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 비용은 크게 늘리고 있다면서, 이민 규제와 외국인 배척을 노골적으로 주장했다. 이들 극우정당이 힘을 모아 이민 규제를 주장할 경우, 유럽연합 이민정책의 근간인 노동시장 자유화 원칙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가입국 확대를 통해 하나의 유럽을 만든다는 목표도 당분간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들 극우정당들은 반유럽연합이라는 기치는 공유하지만, 노골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이념적 특성상 단일한 교섭단체를 만들어 유럽통합을 방해하는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존 중도 정당 주도의 정치체제가 흔들리며 각국 내부의 사회적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유럽연합의 근간을 형성해온 주요 가입국들에서 극우정당의 강경한 목소리가 커진다면 유럽연합 전체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 독일 여론조사 기구인 인프라테스트 등은 이번 선거에서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이 부상한 것은 사회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담아내지 못하는 기존 정당 구조에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도 정당들이 이런 불만을 잠재우지 못한다면, 각국의 국내 정치 구도를 결정지을 총선과 대선 등에서도 극우 세력의 약진이 계속될 수 있다.
영국 독립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3위로 올라선 데 이어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선 1위를 차지했다. 내년 총선에서도 이런 기세를 이어갈 경우 100년 된 영국의 보수-노동 양당체제가 무너지며 정치권이 극한적 이념 갈등에 휩싸일 수 있다. 프랑스 역시 극우 국민전선이 지난 대선에서 18% 득표로 결선 진출에 실패했지만, 앞으로는 양상이 달라질 가능성이 커졌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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