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민간인 17명 사살 혐의
이듬해 미 검찰 기소뒤 부실대응
증거제출 잘못에 공소시효 어겨
법원 2번 공소기각 끝에 첫 재판
처벌의지 안보여 유죄판결 힘들듯
이듬해 미 검찰 기소뒤 부실대응
증거제출 잘못에 공소시효 어겨
법원 2번 공소기각 끝에 첫 재판
처벌의지 안보여 유죄판결 힘들듯
‘전쟁 외주업체’ ‘청부살인 기업’ 등의 별칭으로 불리는 미국의 사설 보안서비스 업체 ‘블랙워터’ 전 직원 4명이 11일 이라크에서 민간인을 무차별 총격으로 살해한 혐의로 7년 만에 정식 재판을 받게 된다고 <에이피>(AP) 통신이 10일 전했다.
2007년 9월16일 이라크 바그다드 번화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니수르 광장의 학살’로도 불린다. 당시 금융가에서 차량 폭탄이 터지자 블랙워터 대원들은 미국인 당국자들을 안전지대로 수송하는 작전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무차별 총격과 폭탄 사용으로 어린아이와 여성 등 이라크 민간인 17명이 숨지고 20명가량이 다쳤다. 블랙워터 대원들은 당시 총격을 받아 응사했다고 주장하지만, 현지 목격자 다수는 이들이 교차로에서 차량 흐름을 차단하려고 총격을 시작했다고 증언한다. 이 사건으로 이라크 내 반미 여론이 들끓었고, 국제사회에서도 거센 비판이 일었다. 심지어 친미 성향의 이라크 정부마저 크게 반발해, 블랙워터의 이라크 내 사업면허를 취소했다. 당시 현지 재판 요구가 거셌지만 이들은 사건 직후 미국으로 돌아왔다.
결국 블랙워터 대원들은 사건 발생 7년 만에 정식으로 미국 법정에 서게 됐지만, 그간의 과정을 살펴보면 제대로 된 진실 규명과 처벌 의지가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미 법무부는 당시 총격을 처음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니컬러스 슬래튼을 비롯한 사건 관련 블랙워터 대원들을 2008년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2009년 말에 컬럼비아특별구(워싱턴) 연방지방법원은 증거 능력에 문제가 있는 증언 제출 등 검찰의 잘못을 지적하며 공소를 기각했다. 이후 이라크에서 분노한 여론이 들끓자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2010년 초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과 만난 뒤 항소할 뜻을 밝히는 등 여론 다독이기에 바빴다.
연방항소법원은 2011년 법무부에 다시 기소할 기회를 줬다. 하지만 미 법무부는 엉터리 일처리로 공소를 다시 기각당했다. 지난해 10월 새로 기소를 했는데, 과실치사 공소시효가 만료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법원은 이런 지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평했다. 결국 미 검찰은 지난달 초에 니컬러스 슬래튼한테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 일급살인 혐의를 추가해 다시 기소했다. 연방지방법원은 지난 5일 기소를 받아들여 정식 재판이 이뤄지게 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일급살인 혐의는 과실치사보다 훨씬 입증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은 최근 사건 증거로 보전되던 차량들을 현지에서 폐기하려 시도하는 등 미 정부의 처벌 의사는 불투명하기 짝이 없다. <뉴욕 타임스>는 “니수르 광장의 총격은 이라크 전쟁의 상징적 순간으로, 한때는 모든 정황이 너무나도 명백해 보였던 사건인데, 미국 정부의 거듭된 실수로 (처벌 가능성이) 약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블랙워터는 미국 해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극우 기독교적 세계관을 지닌 에릭 프린스 등이 1997년에 설립한 회사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함께 부시 정부 아래서 ‘전쟁 용병 사업’으로 급성장하며 논란을 빚었다. 이 회사는 2009년 ‘지(Xe) 서비스’로 이름을 바꿨고 2010년 말에 지분이 개인 투자자들한테 넘어가면서 2011년 아카데미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우크라이나 등 세계 분쟁 현장에서 민간인 유혈 사태에 개입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여전히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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