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항소법원 판결 224건 분석
‘성별과 관계된 민사판결’에 영향
‘성별과 관계된 민사판결’에 영향
지난 2003년 보수적이기로 유명했던 윌리엄 렌퀴스트 미국 연방대법원장은 페미니즘적 판결에 동참해 미국을 놀라게 했다. 주 공무원이 가정 문제로 일정 기간 자리를 비우는 것을 허용하는 ‘가족휴가법’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상급자를 고소할 수 있는지가 쟁점인 사건에서, 그는 가족휴가법을 지지하는 다수 의견에 동참했다.
렌퀴스트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대법관에 임명했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대법원장에 임명한 공화당 보수파였다. 낙태에 반대하고, 공립 학교에서의 종교 교육과 사형 제도에 찬성했다. 하지만 그는 이 사건에서 “가족을 보살피는 일은 여성의 몫이라는 정형화된 성 역할론이 팽배해 있다”며 전통적 성 역할론을 비판했다. 진보 성향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은 이를 두고 렌퀴스트가 이혼 뒤 혼자 자식을 양육하고 있는 딸을 지켜본 ‘인생 경험’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고 했다. 렌퀴스트 대법원장은 전통적 성 역할론을 비판하는 의견을 낸 2년 뒤인 2005년 세상을 떠났다.
<뉴욕 타임스>는 16일 렌퀴스트처럼 딸을 둔 아버지들이 페미니즘적 판결을 내리는 사례가 아들을 둔 아버지들보다 잦다는 연구 결과를 보도했다. 마야 센 로체스터대 정치학과 교수와 애덤 글린 하버드대 교수가 공동으로 연방항소법원 판결 224건에 드러난 판사들의 의견 2500건을 분석해 이런 경향을 발견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연구 결과를 보면, 한명 이상의 딸이 있는 판사들은 페미니즘적 방향으로 의견을 내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판사보다 7% 높았다. 자녀가 딸 1명뿐인 경우와 아들 1명뿐인 경우를 비교해보면, 딸의 아버지인 판사가 페미니즘적 방향의 의견을 내는 경우가 16% 많았다. 하지만, 3000여건의 의견을 무작위로 분석한 결과, 딸이 있는 것과 진보적인 성향은 상관 관계가 없었다. 딸이 있다는 사실은 ‘성별과 관계된 민사 판결’에만 영향을 미쳤다. 신문은 딸이 있는 하원의원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낙태 같은 문제에 대해 좀더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과거의 연구 결과도 있다고 전했다.
판사들의 ‘딸 효과’에 대한 이번 연구를 진행한 마야 센 교수는 “판사들은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다. 개인적 경험이 세상을 보는 눈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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