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미 첩보갈등 ‘점입가경’
하원 NSA 도청스캔들 조사위
휴대전화 등 도청 의심에 보안강화
미국 ‘이중스파이’ 수사도 윤곽
2명 모두 러시아 감시하다 붙잡아
하원 NSA 도청스캔들 조사위
휴대전화 등 도청 의심에 보안강화
미국 ‘이중스파이’ 수사도 윤곽
2명 모두 러시아 감시하다 붙잡아
미국의 독일 내 스파이 활동으로 촉발된 두 나라 간 ‘첩보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독일은 미국에 정보를 넘긴 스파이 혐의자 2명에 대한 조사의 고삐를 바짝 죄면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도청 스캔들을 조사하는 독일 하원 조사위원회 의원들은 미국의 도청과 해킹을 피하려고 ‘수동 타자기’ 사용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컴퓨터에 밀려 사라진 타자기를 다시 사용하는 파격적인 방안을 제시한 이는 하원 조사위의 파트리크 젠스부르크 위원장이다. 그는 15일(현지시각) 독일 공영 <아에르데>(ARD) 방송에 출연해 “나와 동료 의원들은 이메일 사용을 완전히 중단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타자기도 고려하고 있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사실 이미 갖고 있다”며 “농담이 아니다. (미국의) 정보활동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타자기 사용은 미국의 계속되는 불법 해킹을 막기 위한 조처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 조사위 소속 일부 의원들은 위원회 활동을 전후해 제3자에 의한 휴대폰 도청과 해킹으로 의심되는 상황을 경험하면서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고 독일 주간 <슈피겔>이 전했다. 집권 기독교민주당(CDU) 소속의 로데리히 키제베터 의원은 “얼마 전 기술자를 시켜 휴대폰을 시험해봤더니 누군가에게 도청당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좌파당 소속의 슈테펜 보크한 의원도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빈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받는 등 이상한 일이 많았다”며 “정부 당국자가 ‘첩보작전’이 이뤄진 것 같다고 알려줬다”고 했다.
미국의 전자첩보활동을 우려해 조사위원들은 타자기 사용 외에도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고 회의를 하거나 회의 전에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큰 금속상자에 넣어 다른 방에 보관하고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하원 조사위는 지난해 6월 에드워드 스노든이 폭로한 미 국가안보국의 도청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국가안보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폰을 10년 동안 도청해왔다는 폭로가 나오기도 했다.
‘전자도청’에 이어 최근 새롭게 불거진 미국의 ‘이중 스파이’ 사건도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 방첩당국이 수사중인 이중 스파이는 2명이다. 지난 4일 먼저 체포된 마르쿠스 에르(31)는 독일 연방정보국(BND)에서 자료 정리와 암호화를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그는 5월28일 뮌헨의 러시아 영사관에 이메일을 보내 ‘돈을 주면 비밀정보를 넘기겠다’고 제안했다가 독일 국내 담당 정보기관인 헌법수호청(BfV)의 감시망에 걸렸다. 러시아는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독일의 대응 방안을 파악하기 위해 독일 내 첩보활동을 증강하고 있었고, 독일 방첩당국도 이에 맞서 감시활동을 강화한 상황이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하지만 마르쿠스는 이전부터 미국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해왔다는 뜻밖의 진술을 해 독일 정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는 독일 베를린이 아닌 오스트리아 빈 주재 미국 정보요원에게 포섭돼 3만4000달러를 받고 218건의 기밀자료를 넘겨줬다고 털어놨다.
지난 9일 압수수색을 받은 독일 국방부 관리 레오니트 카(37)도 애초 러시아를 위한 스파이 혐의로 당국의 내사를 받던 중 미국과의 관계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르쿠스가 러시아 영사관에 처음 보낸 이메일에 첨부했던 자료 중 하나가 다름 아닌 레오니트와 관련한 문서였다는 게 실마리였다. 레오니트가 러시아 스파이 혐의로 내사를 받고 있다는 내용의 문서였는데, 독일 당국은 러시아보다 먼저 이 자료를 건네받은 미국이 방첩당국의 의심을 받는 레오니트와의 관계를 끊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부랴부랴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는 못한 상태라고 <슈피겔>은 전했다.
잇단 첩보 갈등으로 미국과 독일 관계도 삐걱거리고 있다. 독일은 10일 미국 중앙정보국(CIA) 베를린지부장에게 추방령을 내리는 등 미국을 압박했지만, 미국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15일에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스파이 사건 뒤 처음 통화를 했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미국과 독일의 정보협력 분야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긴밀한 소통을 유지해 협력관계를 강화하자고 말했다”고 전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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