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거품 붕괴 전엔 중앙은행과 정책결정자들이 자산 거품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저명한 경제학자가 거의 없었다. 1990년대 주식 가격이 경제 펀더멘털과 점점 더 괴리됐을 때 대부분 정책 당국자들은 전례 없는 상태에 환호했다. 거품이 잔뜩 낀 주식시장이 문제가 될 것인지는 진지한 논의 대상도 아니었다.
2004년 1월에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은 주식 거품이 제 갈 길을 가게 내버려 두고 거품이 터지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자리 증가가 없는 상태가 대공황 이래 가장 오래 지속되는데도 그런 발언을 한 것이다. 그린스펀의 연설 다음날, 당시 연준 부의장이던 벤 버냉키는 노동시장이 취약해 경기침체가 끝난 뒤에도 기준금리를 1%로 2년여 동안 동결했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미국의 최고 정책결정자들은 자산 거품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까지 매우 굼떴다. 그래서 지난주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마틴 펠드스타인과 로버트 루빈의 기고문이 도드라져 보인다. 최근의 점증하는 자산 거품을 연준이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고 경고하는 내용이다.
펠드스타인과 루빈은 각각 공화당과 민주당의 경제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치는 지적 리더들이다. 펠드스타인은 레이건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30년 동안 경제조사국 소장을 역임했고, 하버드대 교수를 지냈다. 미국의 거의 대부분 보수 경제학자들은 펠드스타인과 함께 연구했거나 그의 제자다. 루빈은 민주당이 월가에 확고한 기반을 만드는 산파 역할을 했다. 그 대가로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5~98년 재무장관을 역임하는 등 보상을 받았다. 로런스 래리 서머스와 티머시 가이트너는 그의 지도 아래 성장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의 고위 인사들도 그의 지혜를 계속 빌린다. 이런 위상 때문에 펠드스타인과 루빈의 기고문은 상당한 주목을 받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의문도 제기된다. 왜 10년 전 주택 거품에 대해서는 경고하지 않았는가? 그들이 2004년 여름 <월스트리트 저널>에 주택 거품의 위험성에 대한 기고문을 실을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미국과 전세계가 막대한 고통을 겪지 않았을 수 있다. 2004년 당시 주택 거품의 위험을 감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미국 주택가격은 일반적인 상승 수준을 벗어나 이미 50% 이상 뛴 상태였다. 시장 펀더멘털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됐다. 소득도 일자리도 자산도 없는 이들한테 대출해주는 것을 뜻하는 ‘닌자’(NINJA) 대출이 얘기되면서, 모기지 시장의 대출 기준 붕괴는 누구나 아는 얘기였다. 게다가 주택 거품은 경제를 끌어가고 있었다. 주택가격 상승이 소비를 늘린 것처럼 주택 건설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당시 거품을 경고하기는커녕 펠드스타인과 루빈은 거품의 혜택을 누리고 있었다. 펠드스타인은 에이아이지(AIG)의 이사로, 1년에 수십만달러를 챙기고 있었다. 루빈은 시티그룹의 최고 경영진이었는데, 시티그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화 시장의 가장 큰손이었다. 거품이 붕괴한 뒤 루빈은 1억달러를 챙기고 떠났다.
그런데 그들의 최근 경고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몇몇 자산의 가격은 높지만, 이들 자산은 주식이나 주택 거품이 그랬던 것처럼 경제를 끌고 가지는 못한다. 정크본드와 같은 자산의 가치 하락에 따른 반향은 그런 자산에 투자한 사람들의 손실로 한정된다. 그것이 시장경제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내기를 걸어 잃기도 하는데, 뭐 어쨌단 말인가.
거품 문제에 관해선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 펠드스타인과 루빈을 앞서가고 있다. 지난달 그는 의회에서 몇몇 자산의 과대평가를 경고했다. 그 뒤 이런 자산들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금융에 끼칠 잠재 위험도 줄었다. 비정상적 자산 가격을 선별적 조처를 통해 정상 궤도로 돌려놓는 것이 금리를 올려 실업자를 양산하고 수백만명의 교섭력을 떨어뜨리는 것보다 훨씬 더 분별있는 것이다.
아무튼 거품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저명한 두 인물이 깨달은 건 대단한 일이다. 10년이나 늦었지만 말이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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