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여자친구 리바 스틴캄프를 살해한 혐의로 남아공 행정수도 프리토리아에서 재판을 받은 뒤 법원을 떠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피스토리우스에게 적용된 살인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프리토리아/AP 연합뉴스
‘의도적 살해’ 검찰 주장 증거 없다며 무죄 선고
과실치사 혐의 등에 대한 선고는 아직 남아
과실치사 혐의 등에 대한 선고는 아직 남아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7)가 살인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재판부는 피스토리우스에게 적용된 과실치사 혐의 등에 대한 선고는 12일에 하기로 했다.
남아공 프리토리아 법원은 11일(현지 시각) 피스토리우스가 여자친구였던 리바 스틴캄프(29)를 의도적으로 살해했다는 검찰 쪽 주장에 충분한 증거가 없다며 의도적 살인 및 살인 혐의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비비시>(BBC) 등이 전했다. 피스토리우스는 발렌타인데이였던 지난해 2월 14일 프리토리아에 있는 자신의 집 욕실에 있던 스틴캄프를 총으로 쏴, 스틴캄프를 숨지게 했다. 피스토리우스는 스틴캄프를 침입자로 오인해 총을 쐈을 뿐 의도적 살해는 아니었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피스토리우스가 스틴캄프를 의도적으로 살해해 놓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맞섰다. 프리토리아 법원의 토코질레 마시파 판사는 11일 “피고인이 의도적 살인을 저질렀다는 (검찰의) 주장은 의심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밝혔다. 마시파 판사가 살인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동안 피스토리우스는 흐느끼기도 했다.
마시파 판사는 피스토리우스가 욕실에 총격을 가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예측하기는 어려워보인다고 밝혔다. 검찰은 피스토리우스 집에서 사람 비명 소리가 났다는 이웃들 증언을 근거로, 피스토리우스가 스틴캄프와 다툰 뒤 스틴캄프를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시파 판사는 “이를 뒷받침할 만한 충분한 사실이 없다”며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과 변호인 양쪽은 피스토리우스와 스틴캄프 사이에 오간 문자 메시지를 근거로 둘 사이 관계가 “파탄 직전이었다”와 “굳건했다”로 엇갈리게 주장해왔다. 마시파 판사는 “보통의 관계도 역동적이고 대부분 예측 불가능하다”며 양쪽 주장 모두를 인정하지 않았다. 피스토리우스는 모델이었던 스팀캄프와 3개월 가량 사귀었다.
양다리와 종아리뼈가 없이 태어난 피스토리우스는 생후 11개월 만에 무릎 아래 다리 절단 수술을 받은 뒤 탄소 섬유 재질의 보철을 양 다리에 끼우고 육상 대회에 참가했다. ‘블레이드 러너’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했던 그는 2012년 런던 장애인올림픽 육상 남자 400m 계주 금메달을 땄으며, 런던올림피과 2011년 대구 세계육상대회에서 일반 선수들과 겨루기도 했다.
피스토리우스 재판은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으나 1995년 무죄를 선고받았던 미식축구 스타 출신 오제이(O.J.) 심슨 사건과 비교되곤 한다. 선정적인 내용 때문에 매스컴이 집중적으로 보도해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던 심슨 사건처럼, 피스토리우스 사건도 지난 3월 재판이 시작된 이래 거의 모든 재판 과정이 텔레비전을 통해 중계됐다.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은 피스토리우스는 지난 7월 나이트클럽에 출입했다가 클럽 안에 있던 다른 사람과 다투는 사건도 있었다.
검찰은 그동안 피스토리우스를 성격이 급하고 격한 사람 쪽으로 주장했으며, 반면 변호인 피스토리우스가 장애 때문에 위험에 대해 예민하다는 식으로 주장해왔다고 <비비시>는 전했다. 피스토리우스 변호인은 재판 과정에서 피스토리우스의 불안장애를 주장해 정신감정을 받았으나, 감정 결과 형사 범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다.
마시파 판사는 11일 “피고인이 지나치게 성급하고 과도한 폭력을 사용했다고 본다”며 “이런 관점에서 피고인의 행동이 부주의했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말했다. 과실치사 등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나올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만약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면, 피스토리우스는 최대 15년형을 받을 수 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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