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에서 5~19일 열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 임시총회에 참석한 주교들이 13일 이번 회의 주제인 ‘가족’ 문제와 관련한 보고서 초안 발표를 귀기울여 듣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세계주교대의원회 임시총회서
‘동성애·이혼·동거 포용’ 방안 발표
‘동성애는 내재적 장애’ 입장 뒤집고
“교회 공동체에 기여할 자격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의지 담긴 ‘초안’
내년 정기총회까지 격론 이어질듯
‘동성애·이혼·동거 포용’ 방안 발표
‘동성애는 내재적 장애’ 입장 뒤집고
“교회 공동체에 기여할 자격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의지 담긴 ‘초안’
내년 정기총회까지 격론 이어질듯
“동성애자도 교회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은사(하늘이 준 재능)와 자격을 갖고 있다.”
이런 내용을 담은 12쪽짜리 문서가 세계 가톨릭 교계를 뒤흔들고 있다. 동성애와 이혼, 혼전동거 등 가톨릭 교회가 전통적으로 금기시해온 관계에 대한 포용적 시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진’, ‘혁명적 전환’이라는 평가 속에 찬·반 양론이 격렬하게 맞부딪치고 있다.
이 문서는 바티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 3차 임시총회의 논의 내용을 담은 일종의 ‘초안’으로 발표됐다. 임시총회는 5일 시작됐으며, 최종보고서는 19일 폐막과 동시에 나온다. 이번 임시총회 책임보고관인 페터 에르도 추기경이 1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켜보는 가운데 회의장에서 이 문서를 낭독하자, 200여 주교와 평신도 등 참석자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곧이어 41명의 주교들이 잇따라 발언에 나섰으며, 반대 의견도 쏟아졌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문서는 “교회가 동성애자와 이혼자, 결혼하지 않은 커플은 물론 이들의 아이들도 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동성애자와 관련해선,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카톨릭의 기존 교리는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동성애자들도 교회 공동체에 기여할 능력이 있다는 점, 또 동성애 커플 사이에 파트너를 위한 희생이라 부를 수 있는 호혜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늘날 사목은 동성애와 동거 등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필요로 한다”면서 “그들은 환영받아야 하고 인내와 사려도 함께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런 관점은 이전까지 가톨릭이 동성애를 ‘내재적 장애’로 규정해온 것과 대비된다. 가톨릭 교회 전문 언론인인 존 트래비스는 “기존 교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성애자를 어떻게 하면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고 평가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문서는 또 교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세속적 결혼과 혼전동거의 긍정적 면모를 이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불어 교회 이혼 절차의 간소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피임에 대해서도 유화적 대응을 주문했다. 하지만 낙태에 대해서는 “새 생명 잉태는 결혼의 기본”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서는 이혼 및 재혼 신자의 영성체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주교들의 의견이 갈렸다면서 뚜렷한 관점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번 회의 과정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의 깊게 경청할 뿐 전혀 개입하진 않고 있다”고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베른트 하켄코트르 주교는 전했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번 초안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이피>(AP) 통신은 “교황이 주교회의 지도부에 보수인사들이 선출되자 지난 10일 6명의 진보파를 긴급 투입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초안 발표를 둔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미국 동성애 권리보호 단체인 휴먼라이츠캠페인(HRC)의 채드 그리핀 회장은 “어둠 속의 빛”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가톨릭 보수파의 중심 인물인 레이먼드 레오 버크 추기경은 “상당수 주교들이 (이번 보고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실제 이번 임시총회 최종보고서 발표까진 주교들의 격렬한 추가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 또 가톨릭 교리 변화와 관련한 논의도 내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주교대의원회 정기총회로 넘어갈 예정이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 결정은 온전히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게 된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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