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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빚에 눌린 아프간 농민들 딸까지 팔아

등록 2005-10-09 19:57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이 양귀비 밭에서 주요 생계수단인 아편을 수확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이 양귀비 밭에서 주요 생계수단인 아편을 수확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주 수입원 양귀비밭 미군이 “마약 소탕” 갈아엎어
합법재배길 막막… “빚 갚으려면 또 심을 수밖에”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낭가하르주의 메마른 고원지대에서 농민들은 아편과 빚에 의지해 삶을 꾸려왔다. 가을이면 소작농들은 마약 밀매상에게서 돈을 꾸어 새 양귀비 종자를 뿌리고 다음해 여름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이 핀 뒤 수확이 끝나면 양귀비로 빚을 갚았다.

그러나, 올해 영국 등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대와 미군이 대대적인 ‘양귀비 소탕작전’을 벌이면서 양귀비 밭은 강제로 갈아 엎어졌다. 그 결과 전세계 마약의 87%를 공급하는 ‘거대한 마약 공장’ 아프간의 양귀비 재배는 올해 처음으로 21%나 줄었다. 작전이 집중된 낭가하르 지역에서는 96%나 감소했다. 그러나, 농민들의 빚은 조금도 줄지 않았고 농민들은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어린 딸들을 마약밀매업자들에게 넘기고 있다.

아프카니스탄 양귀비 재배 현황
아프카니스탄 양귀비 재배 현황

국제이주기구(IOM)와 인권단체들은 최근 낭가하르 등 4개 지역에서 수십명의 농부들과 부족 지도자들을 인터뷰했다. <보스턴글로브>와 <인디펜던트> 등은 이 조사 결과를 인용해 심지어 3살짜리 아이까지 ‘결혼’이란 명목으로 팔려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약 1166달러를 빌렸던 차파하르주의 한 농민은 경작지가 강제로 파괴된 뒤 14살짜리 딸을 마약상에게 주려 했지만 딸이 벙어리라는 이유로 거절 당했다. 결국 40살이 넘은 이웃에게 딸을 주고 받은 돈으로 겨우 빚을 갚았다. 한 농부는 6600달러의 빚을 갚으려고 6살과 10살짜리 딸을 주겠다고 했으나 딸들이 너무 어렸다. 어느날 이 가족은 몰래 파키스탄으로 도망쳤고 빚보증을 섰던 그의 친구가 체포됐다.

잘랄라바드의 25살 된 한 상인은 <보스턴글로브>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한 농부에게 돈을 빌려줬으나 받지 못하자 대신 데려온 14살된 농부의 딸과 지난해 ‘결혼’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아내를 얻어서 행복하지만 처가집은 우리집을 원망하고 있어서 두 집안의 불화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간의 파슈툰 부족 사회에서 빚에 쪼들리거나 분쟁이 일어났을 때 딸이나 여동생을 채권자나 그 아들의 신부나 하인으로 넘겨주고 해결하던 관습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미국과 아프간 정부가 ‘양귀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아프간 마약이 군벌들이나 국제 테러조직의 자금줄이기 때문이다. 아프간의 마약 재배는 80년대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소련에 맞서 싸우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수입원으로 미국 등의 묵인 아래 시작된 이래 아프간 각 지역 군벌들의 ‘화수분’ 노릇을 하고 있다. 빈곤에 찌든 농민들도 다른 작물에 비해 수입이 좋은 양귀비 재배에 적극적이다. 척박한 아프간 땅에서 1에이커(4046㎡)에 아편을 재배하면 1년에 15만아프가니스(약370만원)를 벌지만 같은 면적에 밀을 심으면 수입은 고작 6천아프가니스다.

농민들은 미군이 양귀비 재배를 포기하면 대체 작물을 심을 수 있는 종자도 무료로 대주고 도로도 닦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아무 것도 해주지 않고 있다고 원망한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올해 농민들의 생계 지원에 1800만달러를 투입했지만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많은 농민들은 내년에도 파괴된 양귀비 밭에 다시 양귀비를 심을 것이라며 지금으로선 이 방법밖에 없다고 한숨 짓는다. 1년 안에 빚을 갚지 못하면 원금과 이자는 2~3배로 불어난다. 빚을 갚지 못하면 마약밀매상들은 사람을 죽이거나 집을 빼았는다. 잘랄라바드 근처 신와르의 한 마을에서는 최근 200가구중 30가구가 빚독촉을 피해 파키스탄이나 이란으로 도망쳤다고 부족 원로인 말리크 아프사르가 말했다.

프랑스의 싱크탱크인 센리스위원회는 최근 차라리 아프간의 양귀비 재배를 양성화하자고 아프간 정부에 제안했다. 농민들이 합법적으로 의료용 아편을 재배하도록 하고 정부가 이를 관리하면서 점진적으로 대체 생계수단을 마련해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제약회사들이 진통제 가격 하락을 원치 않는데다 아프간 정부나 유엔 마약및범죄사무소도 합법적으로 재배되는 양귀비가 불법적 유통망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고 <인디펜던트>는 전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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