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 수도 아부자에서는 최근 노동자들이 멀쩡한 가로수를 자르는 풍경이 목격되고 있다. 큰 가로수는 톱으로, 작은 나무는 칼로 가지를 자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일을 하는 이들은 “가로수 아래서 불법적인 일을 하는 이들 때문에 나무를 자른다”고 말한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이들이 말하는 “불법적인 일”이란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환전상이 나이지리아 통화 나이라를 달러나 영국 파운드 또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얄과 바꿔주는 일을 가리킨다.
나이지리아 정부가 가로수까지 베어낼 정도로 불법 환전상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저유가에 따른 경제불안 탓이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중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통계 조정 끝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치고 아프리카 대륙 최대 경제 대국으로 떠오를 정도로 한때 잘나갔다. 하지만 지난 24일 서부텍사스원유(WTI)가 배럴당 40달러 이하로 내려가는 등 국제유가 하락이 계속되자 비상이 걸렸다. 수입에 의존하는 물건이 많은 나이지리아에서 달러 수요는 많은데 원유 수출로 벌어들이는 달러는 줄어들자,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은 쌀과 고무 같은 생활필수품 수입도 제한하고 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현금 인출도 하루 6만나이라(약 300달러) 정도로 제한하는 이례적 조처도 취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중앙은행 총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외화 수입 급감…통화 가치 폭락
나이지리아 현금 인출 제한
베네수엘라 물가 200% 상승 예상
일부에선 고정환율제 포기 만지작
남미의 주요 산유국으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 다른 남미 국가들에 경제적 지원을 많이 했던 베네수엘라의 상황도 만만찮다.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베네수엘라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는 아예 월별 물가상승률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바클레이스은행은 베네수엘라의 올해 물가상승률이 200%에 달할 듯하다고 예상했다. 바클레이스은행이 예측한 200%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이 베네수엘라의 올해 물가상승률이 세자릿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베네수엘라는 자국 통화 볼리바르를 달러당 6.3볼리바르로 고정해 놓았지만, 암시장에서 볼리바르 가치는 지난 12개월 새 90% 이상 떨어졌다. 볼리바르 가치가 워낙 떨어지다 보니 미국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에는 냅킨 대신 2볼리바르 지폐로 튀긴 만두와 비슷한 요리인 ‘엠파나다’를 감싸쥔 사진이 올라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엔엔 머니>는 베네수엘라 동쪽 서인도제도에 있는 섬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가 베네수엘라에 자신들이 휴지를 줄 테니 대가로 석유를 달라고 제안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볼리바르 가치가 형편없다고 전했다. 또 소비재의 70%를 수입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에서는 설탕과 우유, 밀가루 같은 생필품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극단적인 물가상승 때문에 올해 말 500볼리바르나 1000볼리바르 같은 새 고액권 지폐 발행도 고려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현재 최고액권인 100볼리바르의 가치는 암시장에서 미국 달러 기준으로 14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 24인치 삼성 텔레비전 1대를 시장에서 사려면 100볼리바르 1280장이 필요하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베네수엘라가 올해 말에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도 많다.
대표적 산유 부국인 중동 국가들도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내몰리지 않고 있지만 저유가 파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우디아라비아 통화인 리얄은 달러당 3.75리얄로 가치가 고정되어 있는데, 최근 선물시장에서 리얄 가치 하락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지난 20일 아시아 산유국인 카자흐스탄이 저유가를 견디다 못해서 고정환율제를 포기하며 자국 통화 텡게 가치 하락을 용인했는데,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협력회의 회원국들도 곧 고정환율제에 손을 대서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용인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많아지고 있다. 논란이 번지자 아흐마드 칼라이피 사우디 중앙은행 부총재는 <알아라비야> 텔레비전에 출연해 “당국은 달러당 3.75리얄 환율을 고수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우디의 재정적자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20%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걸프협력회의 다른 회원국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재정적자를 기록할 듯 보인다고 국제통화기금은 내다봤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