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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시리아발 ‘인간 화물’의 출처는 외교적 방관

등록 2015-09-04 19:23수정 2015-09-05 10:29

[토요판] 뉴스분석 왜?
유럽 난민사태
▶ 유럽이 몰려드는 난민으로 위기를 맞은 가운데 지난 2일 터키 휴양지 보드룸의 바닷가에서 빨간 셔츠와 파란 반바지를 입고 파도에 떠밀려온 시리아 출신 세살짜리 아이의 주검이 발견되었습니다.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난민 폭발의 위기 속에 있습니다. 5년째 내전을 겪고 있으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리아가 그 원인입니다. 평화적 해결 방법 등 외교적 노력을 다하지 않은 유럽이 결과적으로 난민 위기를 맞게 된 것이지요.

“나는 시리아 사람입니다. 지난해 두바이에서 직업을 잃고 유럽으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취업비자는 만료되었고 갈 곳이 없었습니다. 시리아로 가게 되면 죽임을 당하거나 누군가를 죽여야 되겠지요. 시리아로 돌아가는 것은 대안이 아니었습니다.

시리아인이 터키에 가는 데는 비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유럽에 가기 위해 터키로 갔습니다. 이스탄불에서 지내며 바다를 통해 이탈리아로 가는 방법을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찾았습니다. 모든 페이지는 메르신(터키 동남부 지중해 연안의 항구)을 언급했습니다. 메르신으로 갔습니다. 브로커를 만났습니다. 6500달러(약 760만원)를 달라더군요. ‘매일 대기하고 있어요. 조만간 전화를 받게 될 것입니다.’ 브로커가 말했습니다. 며칠 뒤 전화를 받았습니다.

오라는 곳으로 갔더니 남자와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렌지 농장을 지나 험한 길을 약 30분간 걸었습니다. 보트를 타기 위해서 말입니다. 충분한 물도 없이 보트에서 사흘간 지내며 나머지 난민들이 합류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두려움을 안고 출발했습니다. 보트 엔진이 고장나기 전까지 8시간을 항해했지만 절벽에 부딪혔고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키프로스섬 초계함이 우리를 구조해줬고 터키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돌아와 다시 유럽으로 가는 또다른 배를 탔습니다. 감옥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물도 음식도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화장실도 없었습니다. 배를 탄 임신부와 노인 등은 의학적인 처치가 필요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터키에서 이탈리아, 다시 독일로
‘인간 짐짝’ 되어 배송된 야즈베크
일년 사이 난민 830만명 늘었고
올해 2643명 지중해 건너다 숨져

인구 절반 넘는 1천만명 헤매는
시리아가 난민사태의 핵심
부자나라의 내전 방관으로
유럽은 ‘난민장사터’가 됐다

방관했다가 맞이한 난민 위기

독일에 거주하는 시리아인 무타셈 야즈베크는 지난 4월23일 미국 방송 시엔엔(CNN)을 통해 불법적인 난민 이동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터키에서 이탈리아로, 다시 독일로 건너갔다. ‘인간 짐짝’이 되어 한 국가에서 다른 국가로 배송되는 과정은 위험하기 짝이 없지만 야즈베크는 살아남아 불법적인 경로를 털어놓았다.

지난달 27일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지대 고속도로에서는 주검 71구가 발견되었다. 시리아인으로 추정되는 난민들이다. 이틀이 지난 29일에도 오스트리아~독일 국경지대 도로에서 난민 26명이 목숨을 잃기 직전의 위험한 상태로 트럭에서 발견됐다. 국제이주기구(IOM)가 지난 1일 발표한 난민 현황 통계를 보면, 올해 지중해를 건너다 숨진 난민만 2643명이다. 난민들은 이동하면서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선다. 죽을 각오를 하고 국경을 넘는다.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한다는 것은, 현재의 삶이 죽음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비참하다는 말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세계 난민의 날’을 이틀 앞둔 지난 6월18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촌이 얼마나 심각한 난민 위기를 겪고 있는지 보여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를 보면, 2013년 말에 집계한 세계 난민 5120만명보다 1년 사이에 830만명이 늘었다. 2013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난민 숫자가 가장 많이 집계된 해다. 1년 사이에 증가한 난민 830만명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수치다. 국적별로 보면 전세계 난민 가운데 시리아인(408만여명)이 가장 많다. 5년째 전쟁이 진행중인 시리아 내전이 현재 난민 위기를 일으키는 핵심 원인이다.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전쟁은 ‘난민 위기’가 앞으로도 더욱 가속화될 것을 의미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은 현재 세계가 겪는 난민 위기의 원인으로 ‘외교 실패’를 꼽았다.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인 시리아에서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25만명이 숨졌지만 국제사회는 평화적 해결 절차를 제시하지 못했다. 시리아 인구 2200만명 가운데 자국 내에서 집을 잃고 돌아다니는 이들이 760만여명(34.5%), 국경을 벗어난 난민이 400만여명(18.2%), 사망자가 25만여명(1.1%)이다.

시리아인들이 전쟁으로 어떤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는지는 언론을 통해 5년째 세계에 보도됐다. 그러나 ‘내 집 뒷마당에서의 죽음’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지난달 오스트리아~헝가리 국경지대에서 발견된, 시리아인으로 추정되는 난민 주검 71구는 유럽이 난민 문제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독일 정부는 유럽연합의 더블린조약과 상관없이 “시리아 망명 신청자 전원을 수용한다”고 지난달 24일 밝혔다. 더블린조약은 유럽연합 지역에 들어온 모든 난민은 최초로 발을 들여놓은 국가에 망명 신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인들이 서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유럽연합 회원국 헝가리는 시리아 난민의 망명을 제한해왔다. 헝가리는 최근 쏟아지는 난민들을 막기 위해 남부 세르비아와의 국경에 175㎞에 달하는 철조망 장벽을 세웠을 정도다. 시리아에서 출발해 터키, 그리스, 세르비아, 헝가리를 거쳐 서유럽으로 들어가려던 난민들이 냉동 트럭 같은 ‘죽음의 코스’를 달려야 했던 이유다.

시리아인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데는 좀더 나은 삶도 있지만 인접국의 난민 포화 상태도 한몫한다. 터키에 있는 시리아인은 현재 2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같은 난민들끼리의 일자리 경쟁과 실업 등은 이들의 경제난을 부추긴다. 레바논은 인구 4명 가운데 1명이 시리아 난민이다. 이슬람을 믿는 주변국은 경제적 어려움도 있지만 종파 갈등에 휘말릴까봐 시리아 난민 위기를 방관하기도 한다. 레바논이 대표적인 경우다. 세속화된 이슬람 국가, 터키를 제외하면 아직은 종교와 정치가 쉽게 분리되지 않은 곳이 이슬람권이다.

레바논은 1975~1990년 내전을 겪었다. 원인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대거 유입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7년, 영국과 미국은 국제연합을 통해 팔레스타인을 아랍인과 유대인 거주 구역으로 분리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반대한 이집트 등의 아랍군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였지만 패했다. 전쟁 패배는 난민을 양산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땅을 내주고 탈출한 난민 가운데 10만여명이 레바논에 유입됐다. 난민들은 레바논을 작전 기지로 삼아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무장단체를 만들었다. 이스라엘을 추종하는 레바논기독교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 무장단체를 1975년 4월 공격하면서 시작된 내전은 이스라엘까지 끌어들였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공격한다는 이유로 1982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를 점령한 것이다. 레바논 내전으로 인구의 약 25%인 15만~23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일련의 전쟁을 거친 레바논은 현재 종교별, 종파별로 사는 지역이 다를 만큼 긴장 섞인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레바논으로 밀려드는 시리아 난민은 이슬람 수니파다. 종파별 균형을 지켜오던 레바논은 시리아 난민 유입으로 특정 종파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위험에 노출됐다.

터키 메르신과 헝가리 케치케메트

시리아 난민의 급격한 증가, 경제적 고난, 유럽으로 가는 길의 어려움 등은 난민 범죄를 양산했다. 불법적 방법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게 도와주는 난민 브로커와 이들이 기생하는 도시가 생겼다. 지난 4월23일 미국 방송 시엔엔을 통해 불법적인 난민 이동 과정을 설명한 시리아인 무타셈 야즈베크가 지목한 곳은 터키 메르신이다. 지중해 동남부의 중요 항구인 메르신에는 유럽으로 가려는 시리아인들이 모이고, 이들로부터 돈을 받은 난민 장사꾼들이 보트 등을 통해 시리아인을 유럽으로 실어나른다. 난민들의 최종 목적지가 독일로 꼽히는 가운데 이들의 통상적 경로는 시리아 등 중동~터키~그리스~헝가리~오스트리아~독일이다.

브로커 조직은 터키 이스탄불 등에 몰린 난민을 물색하고 이들을 메르신으로 보낸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서 전세계 난민을 유혹한다. 방법은 관광업체와 비슷하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등 유럽의 대표 관광지 사진을 배경으로 모객을 한다. “메르신으로부터 이탈리아까지. 1인당 5000달러.” 난민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가장 저렴하면서도 합리적일 것 같은 최선의 브로커 휴대전화 번호를 찾는다. 가격은 1인당 4000~6000달러 수준이다. 메르신에서의 불법 난민 이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터키 연안경비대의 순찰도 강화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헝가리 중부도시 케치케메트도 난민 범죄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27일 트럭에서 숨진 71명의 난민들도 케치케메트에서 출발했다고 헝가리 정부는 밝혔다. 이 ‘인간 화물’ 차량은 케치케메트에서 출발해 세르비아 국경에서 난민을 태운 뒤 오스트리아로 향했다. 롭 웨인라이트 유로폴 국장은 “대륙을 넘나드는 난민 장사 네트워크가 급증하고 있다”며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새롭고 국제적인 방법으로 진화하고 있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범죄 건수도 증가했다. 케치케메트시의 퍼렌츠 비키체이 판사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달 서너건에 불과하던 범죄가 올해 들어 25~30건으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지난해 난민을 이용한 브로커 범죄 등은 593건이었으나 올해 827건으로 증가했다. 국제사회가 시리아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증가하는 난민 위기와 이들을 이용한 범죄, 짐짝이 된 인간의 비극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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