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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99%를 위하여…‘오바마의 노동 개혁’은 달랐다

등록 2015-09-13 20:10수정 2015-09-14 13:50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노동절을 맞아 보스턴을 방문했다. 워싱턴 백악관에서 출발한 그의 전용기 에어포스원에는 노조 지도자들도 동승시켰다. 노동세력에 힘을 실어주려는 상징적인 제스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보수진영이 아직까지도 노조를 약화시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들은 노동자 보호 조처를 약화시키고, 작업장 안전을 훼손하며,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노조와의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700여명의 청중에게 노조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그는 “노조가 없거나 노조를 금지한 나라에서 가혹한 착취가 일어나고, 노동자들은 늘 산재를 입고 보호받지 못한다. 이것은 노조운동이 없기 때문”이라며 “모든 작업장은 우리의 노동 가족들의 가치와 존엄을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노동자 안전과 노동자 조직 결성을 위해 싸우는 이유”라고 말했다.

사용자에 확 기운 레이거노믹스
대공황 이래 ‘빈익빈 부익부’ 최악
노조 탄압 심해져 조직률 13%뿐
생산성 72% 늘 때 임금 9% 올라

오바마, 노사관계 균형추 잡기 나서
파견노동자 ‘원청업체 사용’ 결정
화이트칼라엔 초과수당 대상 확대
최저임금, 평균임금의 절반 인상 추진

잇단 개혁조처 파급효과 있지만
대부분 ‘행정명령’ 방식이라 한계
정권 바뀌면 뒤집어질 가능성도
내년 대선·의회 선거에 성패 달려

임기 말에 접어든 오바마 대통령이 노동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방향은 노동세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1980년대 이후 사용자 쪽으로 확연히 기운 노사 관계에 균형추를 잡으려는 것이다.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최근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고용한 원청업체들에 ‘공동 사용자’ 지위를 부여한 것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초과근로수당 수혜자 대폭 확대, 유급 병가제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의 노동세력은 1950~60년대 황금기를 누렸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용자들로부터 상당한 권익을 보장받았다.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들은 1949년 제너럴 모터스(GM)와의 협상에서 노사화합을 약속하는 대가로 건강보험과 퇴직수당, 그리고 생산성 향상에 따른 임금을 보장받았다. 이른바 ‘디트로이트 협약’이라고 불리는 이 합의는 그 이후 다른 노조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강력한 노조의 존재는 노조원들은 물론이고, 비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의 권익도 신장시키는 구실을 했다.

그러나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등장으로 노동세력은 긴 어둠의 터널 속으로 들어섰다. 레이건 대통령 집권 첫해인 1981년 여름 연방항공통제관제소 파업 사건이 그 전환점이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관제소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곧바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48시간 내 근무지로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관제소 간부들과 군인들을 현장에 대체 투입했다. 관제소 직원들이 이를 거부했고, 레이건 대통령은 1만1000여명의 직원들을 해고 조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민간기업들의 노조 탄압이 강화됐고, 노조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됐다. 1970년대 말 26%를 넘었던 노조 조직률은 1980년대 중반 20%대 벽을 깼고, 지금은 13% 수준에 그친다.(그래프 참조)

규제완화와 대규모 감세를 핵심으로 한 레이거노믹스는 이후 미국 경제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놨다. 부자들과 대기업들을 사회적 책임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게 하면 부의 파이가 커지고, 낙수 효과를 통해 사회 전체가 혜택을 볼 것이라는 이른바 ‘공급주의 경제학’이 주류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이는 부가 상위층에만 쏠리게 함으로써 소득 불평등 확대를 초래했다. 1930년대 초반 대공황 직전 이래 최악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났다.

미국 경제학계에서는 처음에는 이런 극심한 소득 불평등의 주요 원인으로 세계화와 기술 변화를 꼽았다. 이런 경제 환경의 변화가 고학력의 숙련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혜택을 보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소득 격차의 일부분만 설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저학력 노동자와 고학력 노동자 간의 소득 격차가 증가하는 상황만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레이거노믹스 이후 노조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약화된 데 있다는 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와 미국의 대표적인 노동경제학자인 로버트 라이시 교수 등이 이런 주장을 펴는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소득 불평등 연구자들인 프랑스의 토마 피케티와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에마뉘엘 사에즈 교수 등도 비슷한 결론을 내고 있다.

실제로 노조 조직률의 하락과 소득 불평등의 악화는 동전의 양면처럼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노조 조직률이 1980년대 이후 급전직하할 때 소득 격차는 같은 시기에 악화를 거듭했다.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의 연구 결과를 보면, 노동자들의 임금 증가율은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산성 증가율에 근접했다. 노동자들이 성과의 대가를 임금으로 보상받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1973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성은 72.2%나 증가했으나, 임금은 9.2% 증가에 그쳤다.(그래프 참조) 파이가 커진 부가 노동자들이 아닌 다른 계층으로 돌아가고, 노동자들은 정당한 분배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바로 이 점에 주목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1월 대통령 취임 직전에 네바다주의 지역신문인 <리노 가제트-저널> 논설위원들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관련한 자신의 생각의 일단을 내비쳤다.

“나는 내가 특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시대의 흐름이다. 예컨대, 1980년 대선은 달랐다. 나는 레이건 대통령이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미국의 진로를 바꿔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를 근본적으로 다른 길로 들어서게 했다. 그는 1960년대와 70년대의 과잉과 함께 정부가 규모를 키우면서도 책임감은 그만큼 갖지 못했다고 느꼈다… 레이건이 대통령이 되기 20년 전에도 그랬다. 존 케네디 대통령도 미국을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이끈 것처럼 많은 것이 시대와 관련돼 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오바마 대통령이 노동권을 급격히 위축시킨 레이건 대통령에 못지않은 영향력을 반대 방향으로 행사해 ‘민주당의 레이건’이 되겠다는 목표를 이때부터 갖고 있었다고 평했다.

과연 오바마의 실험은 어느 정도 파급효과를 갖고 있고 미국의 경제사회 구조를 새로운 궤도로 접어들게 만들 수 있을까.

오바마 행정부의 최근 노동개혁 조처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연방노동관계위원회의 원청업체에 대한 ‘공동 사용자’ 결정이다. 발단은 청소업체 브라우닝페리스, 인력파견업체 리드포인트, 그리고 이들의 지시에 따라 재활용품 센터에 파견된 노동자들의 노동분쟁이었다.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서 분쟁이 생겼다. 이 위원회는 이 사건을 1년여 동안 조사한 뒤 원청업체 브라우닝페리스에 공동 사용자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간 노사관계 책임을 리드포인트에 모두 떠넘기던 브라우닝페리스를 상대로 노동자들이 단체교섭을 요구할 권한이 생긴 것이다.

위원회는 결정문에서 “2014년 8월 현재 중개기관을 통해 고용된 노동자가 287만명이나 된다”며 “위원회는 기존의 공동 사용자 기준이 노동 현장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했다고 본다”라고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위원회는 이어 “앞으로 중개인을 통해 간접적으로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공동 사용자를 결정할 때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노동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패스트푸드점을 비롯한 프랜차이즈 업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위원회는 현재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널드의 노사분쟁 사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이고 있다.

기존의 규정 아래서는 이들 노동자들을 직접 통제하지 않으면 사업장을 폐쇄해도 노동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파견업체나 가맹점의 노조 결성을 방해하거나 교섭에 성실히 응하지 않으면 처벌을 받게 된다. 예컨대, 본사가 파견업체나 가맹점에 인력 관리 소프트웨어만 제공해도 공동 사용자 요건이 된다. 브라우닝페리스의 경우, 특정한 노동자 채용 기준을 제시한 것은 물론, 노동자 계약 해지 권한을 보유하고, 임금의 상한선과 근무교대 시간까지 제시했다. 이번 결정은 1980년대 이후 기업들이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파견업체나 가맹점에 떠넘기던 관행을 뒤집는 것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노동법 전문 변호사인 마셜 뱁슨은 <뉴욕 타임스>에 “이 결정은 지난 35년간 이 위원회가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유도도 오바마 행정부가 주력하고 있는 정책이다. 미국의 연방 최저임금은 2009년 시간당 7.25달러로 책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10.10달러로 인상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의 반대로 어렵게 되자 지난해 연방정부 계약 노동자들에게 우선 적용했다. 연방 차원에서는 더 이상 진전이 없지만, 코네티컷주를 시발로 10여개 주가 최저임금을 연방 기준 이상으로 높였으며, 로스앤젤레스·샌프란시스코·시애틀 등 주요 도시들도 뒤따르고 있다. 이들 3개 도시는 2018년까지 15달러로 인상할 방침이다.

미국의 최저임금은 1968년 1.6달러(2014년 물가 환산 시 10.88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레이건·부시 행정부 시절인 1981년부터 10년간 동결되는 것을 계기로 빈곤선(2인 가족 기준) 아래로 추락했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는 보고서에서 “현재 최저임금은 생산직 노동자 평균임금의 36% 수준으로 2인 가족 빈곤선에도 못 미친다”며 “시간당 임금을 2016년까지 10.10달러로 인상할 경우 평균임금의 50% 수준으로 올라 3인 가족 빈곤선을 웃돌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초과근로수당은 주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6월 초과근로수당 수령 자격을 연봉 2만3660달러 이하에서 5만440달러 이하로 상향 조정했는데, 이 조처로 약 500만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7일 노동절을 맞아 발표한 유급 병가제 도입으로 혜택을 입는 노동자는 약 30만명이다.

일각에선 1980년대 레이건의 노동 규제 완화 이후 사용자 쪽으로 급격히 기운 노사 세력 관계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뉴욕 타임스>는 지난달 31일 이런 조처들에 대해 “오바마 행정부가 법과 규제를 현재의 경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개정할 뿐만 아니라, 공화당 행정부들이 노동자들을 불리한 처지로 내몬 조처들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격월간지인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의 해럴드 마이어슨 편집장은 “올해 노동절에는 미국 노동자들이 1970년대 이후 처음으로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였어야 할 것들을 되찾기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잇따른 개혁 조처는 전반적으로 볼 때 제대로 시행될 경우 상당한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책이 행정명령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내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 경우 뒤집힐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또 법원 소송이나 의회의 견제로 핵심 조항이 무력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부당노동행위 조사 권한을 가진 연방노동관계위원회의 경우, 위원 5명은 대통령 임명직이지만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공화당의 반대로 공석을 메꾸지 못하다 지난해에야 5명의 위원(민주당계 3명, 공화당계 2명)을 가까스로 모두 채웠다.

원청업체의 공동 사용자 지위 부여 결정이 노동세력에 유리하게 나온 것도 이런 정치적 싸움의 결과다. 레이건 행정부 때는 과거의 전례를 깨고 노조에 반대하는 강성 인사들을 위원으로 임명해 노동 규제 완화의 물꼬를 튼 바 있다. 내년에 정권이 바뀔 경우 5년 임기의 위원 구성이 변화할 것은 불문가지다. 유급 병가제를 규정한 행정명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하는 2017년부터 실시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레이건 유산 되돌리기 작업의 성패가 상당 부분 내년 대통령 및 의회 선거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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