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쪽 2개 미국과 직결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인터넷 도감청 프로그램 ‘엑스키스코어’는 어떻게 서울에 있는 박태호 전 통상교섭본부장의 전자우편을 도감청했을까?
인터넷은 전세계 컴퓨터가 연결된 거대한 망이다. 한국인이 캘리포니아에 서버가 있는 구글 메일로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친구에게 전자우편을 보내는 것은 광케이블로 연결된 인터넷망 덕분에 가능하다. 광케이블은 가는 유리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광섬유로 빛을 통해 정보를 송수신한다. 구리선 등에 비해 데이터 전송률이 뛰어나다. 1970년대에 미국 기업이 발명해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매설되기 시작했다.
해저 광케이블은 대륙과 연결된 뒤 해당 국가의 최상위 인터넷망인 ‘백본’(backbone·척추)망에 연결되고, 백본망은 다시 하위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ISP)를 통해 비로소 가정·기업 등에서 인터넷 이용자와 만난다. ‘고속도로-지방도로-자전거도로·인도’처럼 여러 층위의 도로로 집과 세상이 연결된 것과 같은 이치다. 라우터는 인터넷망 구성의 핵심 부품으로,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에 해당한다. 진입로와 출구가 없는 고속도로처럼, 라우터가 없으면 인터넷망이 존재할 수 없다. 스노든 문건에서 국가안보국이 전세계 광케이블에 마음대로 접근해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도감청한 정황이 드러나 있다. 정보고속도로에 도로 주인의 허락 없이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던 셈이다.
2013년에 보도된 ‘전세계의 시긴트(신호정보 수집)/방어 암호화 플랫폼’이라는 제목의 스노든 문서가 대표적이다. 국가안보국이 전세계 해저 광케이블망에서 어떻게 인터넷 도감청을 하는지 표와 선, 짤막한 설명으로 드러나 있다. ‘하이스피드 옵티컬 케이블(광케이블)-비밀스런, 또는 협력에 의한 대규모 (광케이블) 접속. 전세계에 20개 프로그램’이라는 문구가 논란을 불렀다. ‘협력’이라는 단어가 ‘인터넷서비스업자로부터의 협력’ 아니냐는 의혹이 많이 제기됐다. 사기업이 국가안보국의 무차별 인터넷 도감청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수정보원 작전 기업 포트폴리오 점검’ 제목의 스노든 문건은 더 충격적이다. 국가안보국은 인터넷통신사의 광케이블과 라우터를 통한 인터넷 도감청을 ‘특수정보원 작전’(SSO)이라고 지칭했다. 이 문건은 ‘(국가안보국의) 핵심 기업 파트너를 통해 전세계의 광케이블과 라우터에 접속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주된 타깃: 글로벌’이라는 문구도 눈에 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이 펴낸 2014년 <한국인터넷백서> 등을 보면, 우리나라는 부산·거제·태안에서 모두 9개의 국제 해저케이블과 연결된다. 거제에 연결된 2개의 국제 광케이블은 아시아, 중동 국가를 거쳐 영국과 만난다. 부산의 국제 케이블 중 2개가 미국과 연결돼 있다.
외교부 등 22개 중앙행정기관은 통신사업자의 기간전송망을 임대하여 인터넷망을 구축해 사용한다. 광주에 위치한 정부통합전산센터에서 관리한다. ‘서울대 정보화본부’ 홈페이지를 보면,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경우 케이티, 엘지유플러스, 에스케이브로드밴드 등 3개 아이에스피의 인터넷서비스를 모두 사용해 인터넷망을 구축했다. 서울대는 우리나라 인터넷 도입의 선구적 기관 중 하나로, 별도로 초고속 연구망을 갖고 있지만 일반 교직원이 이용하지는 않는다.
미래창조과학부 고시를 보면, 인터넷 해저 광케이블·라우터 등 인터넷 기간통신망과 관련한 통신장비는 국가기반시설로 지정돼 있다. 국내 인터넷망의 허브인 국내 중계국에도 정기적으로 국가정보원 직원이 나와서 시설 관리 상태, 유지보수 상태 등을 점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안보국은 외교부나 서울대로 이어지는 ‘정보고속도로(케이블)나 인터체인지(라우터)’ 중간 어디쯤에서 정보를 가로챈 것으로 추측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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