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사는 시크교도가 ‘조작된 셀카’ 한 장으로 파리 동시다발 테러 사건 용의자 누명을 쓰는 곤욕을 치렀다.
캐나다에서 프리랜서 집필가로 활동하는 인도계 시크교도 베렌데르 주발은 지난 13일(현지시각) 파리 동시다발 테러가 발생한 뒤 트위터에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조작한 사진이 떠도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사진 원본은 주발이 오래전 자신의 트위터(@Veeren_Jubbal)에 올린 것으로, 양손으로 아이패드를 들고 욕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전형적인 ‘화장실 셀카’다. 하지만 조작된 사진은 주발이 아이패드 대신 코란을 들고 파란 셔츠 위에 폭탄 조끼를 덧입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누군가가 주발을 골탕먹이려고 포토샵으로 욕조 위에다 원본 사진에 없던 성인용품까지 추가했다. 주발은 15일 트위터에 원본 사진과 조작된 사진을 함께 올리며 “그러니까 이렇게 됐다. 이걸 퍼뜨려달라. (So, like, it spread.)”라고 썼다.
‘악의적인 합성사진’은 파리 동시다발 테러 직후 ‘용의자의 범행 전 모습’이라는 설명과 함께 트위터를 타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면서 한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스페인의 유력 매체인 <라 라손(La Razón)>은 조작된 사진을 근거로 주발을 ‘파리 테러 용의자 중 한 명’으로 지목해 15일자 1면에 내는 대형 오보를 냈다. 유럽의 여러 매체가 <라 라손>의 보도를 그대로 인용했다. 이슬람국가(IS) 선전매체인 <킬라프 뉴스>는 ‘축복받은 형제’라며 그를 추켜세웠다.
각국의 보도로 얼굴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비난에 시달리자, 주발은 자신이 터번을 쓴 시크교도이며 파리에 가본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일으킨 불씨가 대형 언론의 ‘허술한 팩트체크’를 거쳐 큰불로 번진 셈이다.
조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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