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만에 첫 자유선거로 치러진 지난 11월8일 총선에서 아웅산수찌 민족민주동맹(NLD) 대표가 투표장으로 가고 있다. AFP 연합뉴스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58) 버마 정치의 앞날
(58) 버마 정치의 앞날
“물고기와 벌레가 회담 끝에 온 세상을 손아귀에 넣자며 짐승들 공격을 결의하더니 날렵한 물고기를 왕으로 싸움꾼 벌레를 총사령관으로 뽑았다. 물고기벌레연합군은 짐승들을 쓰러트렸고 그 주검들로 큰 잔치를 벌였다. 너무 먹은 물고기대왕은 배가 부풀어 올라 꼼짝할 수 없었고 벌레대원수는 숨이 막혔다. 대원수는 부하들이 온몸을 두드려 목숨은 건졌지만 납작해지고 기억을 잃어버려 동지들을 향해 마구 칼을 휘둘렀다. 허나 잔치가 끝나기도 전에 군사를 추슬러 반격해온 짐승들 앞에서 움직일 수 없는 대왕과 기억을 잃어버린 대원수를 지닌 연합군은 손을 들고 말았다.”
방위군사령관이 국방장관을 임명
요즘 버마(현 국호 미얀마) 정치판을 보면서 떠오른 복어와 메뚜기에 얽힌 버마 설화 한 토막이다. 50년 넘도록 독재로 배를 불린 군부나 시민이 만들어준 정치적 동력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웅산수찌의 민족민주동맹(NLD)이 딱 그 짝이다. 머잖아 시민들 반격을 받게 될 날이 올 것 같기도 하고.
지난 11월8일 총선에서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은 민족의회(상원) 224석 가운데 135석, 인민의회(하원) 440석 가운데 255석을 차지했다. 비록 군부가 2008년 만든 헌법 제141조(b)와 제109조(b)를 통해 두 의회 의석 25%를 자신들 몫으로 후무려놓아 실질적인 민족민주동맹 의석은 민족의회 60%와 인민의회 58%에 그쳤지만 선거만 놓고 보면 25년 전 1990년 총선 때처럼 80% 가까이 거머쥐며 크게 이겼다. 반대쪽 테인세인 대통령을 앞세운 현 집권 군부정당인 연방단결개발당(USDP)은 2000년 민족민주동맹이 불참한 총선에서 거뒀던 76.5%를 이번에 고스란히 민족민주동맹한테 넘겨준 채 6%에도 못 미치는 소수당으로 나가떨어졌다.
민족민주동맹 안팎에서는 요즘 추리극이 한창이다. 내년 3월까지 새 정부를 짜고 의회 다수당 몫으로 돌아온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과제를 안았지만 또렷한 그림이 나오지 않는 탓이다. 으레 혼자 결정하고 혼자 선언하는 독선적인 아웅산수찌에게 길들여졌다고는 하지만 정부 구성을 코앞에 둔 정당치고는 지나치게 소문만 흘려대고 있다. 총선이 끝나고 한달이 지났지만 아웅산수찌한테서 나온 말이라고는 “대통령 위에 있을 것이다”라는 게 다다. 사실 그 말도 선거 하루 전 기자회견에서 튀어나왔지만. 현실적으로 두 아들이 영국 시민인 아웅산수찌는 ‘자신과 부모, 배우자, 자식 가운데 외국 시민권자가 있으면 대통령을 할 수 없다’고 박아놓은 헌법 제59조(f)에 발목이 잡혀 대리인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니 저마다 아웅산수찌가 내놓을 허수아비 대통령을 헤아린다고 난리들이다. 나도는 이름만도 예닐곱이 넘는 판에 아웅산수찌의 주치의 노릇을 해온 띤묘윈과 민족민주동맹 창당자 가운데 한 명인 띤우가 소문에서만큼은 앞서는 모양새다. 여기에 아웅산수찌가 개혁주의자라며 아주 가까이 해온 인민의회 의장 슈웨만도 만만찮게 오르내린다. 이 자는 군사독재 서열 3위 장군 출신으로 연방단결개발당 대표를 하다 지난 8월 테인세인 대통령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인물이다. 그러다 아웅산수찌가 12월2일 군최고사령관 민아웅흘라잉을 만난 데 이어 4일 군부 실권자 탄슈웨를 만나고부터는 군부가 아웅산수찌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초헌법적 소문까지 덧붙었다. 늘 그랬듯이 아웅산수찌가 그 중대한 회담 결과를 시민사회와 공유하지 않았던 탓이다.
민족민주동맹 안팎 추리극 한창
현행법상 대통령 할 수 없는 수찌
누구를 허수아비로 세울 것인가
띤묘윈, 띤우, 슈웨만, 아니면… 집권을 한다 해도 군부와 권력을
나눠가질 수밖에 없는 수찌
그는 눈을 감았고 입을 닫았다
본질적으로 헌법을 고쳐야 한다 현재 또렷한 건 딱 하나다. 버마 차기 대통령은 아웅산수찌가 부리기 아주 편하면서 능력보다는 충성심을 갖췄고 군부와 가까운 인물일 것이라는 사실쯤. 이건 머잖아 버마에도 허수아비를 내세운 초헌법적 정부가 들어선다는 뜻이다. 2004~2014년 소냐 간디가 온순한 경제학자 만모한 싱을 총리로 내세워 대리정치를 했던 인도처럼, 또 2006년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친나왓이 2014년까지 동생 잉락을 비롯한 총리 넷을 앞세워 정치판을 주물렀던 타이처럼. 문제는 차기 정부 형태다. 먼저 현 정부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구 노릇을 해온 국방안보회의를 눈여겨볼 만하다. 헌법 제201조에 따라 국방안보회의는 대통령, 부통령 2명, 인민의회 의장, 민족회의 의장, 방위군 최고사령관, 부사령관, 국방장관, 외교장관, 내무장관, 국경장관을 포함한 11명으로 구성한다. 이 가운데 군부가 쥐게 될 자리가 부통령 하나를 포함해 최소 6명에 이른다. 헌법 제232조(b)는 방위군최고사령관이 국방장관, 내무장관, 국경장관을 지명하도록 못박아두었다. 이 기형적인 조항 탓에 ‘대통령이 국방안보회의 제청과 동의를 받아 방위군 최고사령관을 임명한다’는 헌법 제342조도 있으나 마나다. 아웅산수찌 정부가 군과 경찰을 손에 쥘 수 없다는 뜻이다. 소수민족과 분쟁 상태인 현실 속에서 사회 조정기능에 치명적 한계를 지닌 셈이다. 게다가 군부의 지출과 결산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이고 군사령관은 특별자금법에 따라 의회 동의 없이 독자적 사업들을 통해 무제한 자금을 끌어 쓸 수도 있다. 이게 현재 버마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모조리 군부가 쥐고 흔들 수 있는 발판이다. 아웅산수찌 정부가 경제도 맘대로 끌어가기 힘들다는 뜻이다. 결국 아웅산수찌가 군부와 권력을 나눠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까닭이다. 달리 아웅산수찌가 그동안 야당 지도자로서 시민 생존이 걸린 현안들에 침묵으로 군부 손을 들어주었던 사실을 놓고 보면 이미 권력분점에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버마 인구 40%를 차지하는 135개 소수민족들이 겪어온 불평등과 차별 문제에서도, 댐과 광산을 비롯한 대형 개발 프로젝트들이 불러온 환경파괴 문제에서도, 인종·종교분쟁으로 튀어오른 로힝자 무슬림 살해사건에서도, 얼마 전 교육개혁을 외친 대학생들이 줄줄이 잡혀가는 현실에서도 아웅산수찌는 눈을 감았고 입을 닫았다. 아웅산수찌-탄슈웨 밀월정부를 미리 보는 까닭이다. 민족민주동맹에 표를 던진 시민 80%가 결코 원치 않는 시나리오겠지만, 아무튼. 의회 밖에서 군부 압박해야 하는데 결국 버마 정치는 본질적으로 헌법을 뜯어고쳐야 온전해진다. 근데 헌법 제436조(a)는 의회 75% 이상 동의를 얻어야 개헌 발의를 할 수 있다고 박아두었다. 군부가 25% 지정석을 차지한 현실에서 개헌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50년 넘게 권력을 주물러온 군부가 갑자기 자신들의 안전판을 떼버리고 사라질 것이라 여기는 건 지나친 낭만이다. 여기서 아웅산수찌가 지닌 60% 의석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아웅산수찌가 개헌을 원한다면 그리하여 정치를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시민사회의 지원을 받아 의회 밖에서부터 군부를 압박하는 게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소수민족해방세력이나 민주혁명조직들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밀실정치, 독선정치, 불통정치 챔피언으로 떠오른 아웅산수찌를 향한 불만만 높아가고 있다.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탄케는 “아웅산수찌 하면 자동으로 독재자가 떠오른다”고 했고, 까렌민족연합(KNU) 전 부의장 데이비드 타까보는 “민주독재” 가능성을 말하면서 “도둑을 잡고자 도둑을 놓는 꼴이 될까 무섭다”고도 했다. 누가 아웅산수찌한테 이 버마 설화를 들려줄 수 있을까? “한 왕자가 나타나 괴물한테 고통받던 골짜기 마을을 해방시키자 사람들은 그 보답으로 통치권을 주었으나 그 왕자는 곧 사라져버렸고 더 나쁜 괴물이 나타났다. 또 다른 전사가 나타나 괴물을 해치우면 더 나쁜 괴물이 또 나타나기를 되풀이. 해서 마을 젊은 지도자가 나서 괴물을 해치운 뒤 찾아간 한 환상적인 동굴에는 온갖 보석과 여인들이 넘쳐났다. 시간을 잊고 즐기던 그이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이 괴물로 변한 사실을 보면서 결국 부와 권력이 자신을 부패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필자의 요청에 따라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5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현행법상 대통령 할 수 없는 수찌
누구를 허수아비로 세울 것인가
띤묘윈, 띤우, 슈웨만, 아니면… 집권을 한다 해도 군부와 권력을
나눠가질 수밖에 없는 수찌
그는 눈을 감았고 입을 닫았다
본질적으로 헌법을 고쳐야 한다 현재 또렷한 건 딱 하나다. 버마 차기 대통령은 아웅산수찌가 부리기 아주 편하면서 능력보다는 충성심을 갖췄고 군부와 가까운 인물일 것이라는 사실쯤. 이건 머잖아 버마에도 허수아비를 내세운 초헌법적 정부가 들어선다는 뜻이다. 2004~2014년 소냐 간디가 온순한 경제학자 만모한 싱을 총리로 내세워 대리정치를 했던 인도처럼, 또 2006년 쿠데타로 쫓겨난 탁신 친나왓이 2014년까지 동생 잉락을 비롯한 총리 넷을 앞세워 정치판을 주물렀던 타이처럼. 문제는 차기 정부 형태다. 먼저 현 정부에서 실질적인 권력기구 노릇을 해온 국방안보회의를 눈여겨볼 만하다. 헌법 제201조에 따라 국방안보회의는 대통령, 부통령 2명, 인민의회 의장, 민족회의 의장, 방위군 최고사령관, 부사령관, 국방장관, 외교장관, 내무장관, 국경장관을 포함한 11명으로 구성한다. 이 가운데 군부가 쥐게 될 자리가 부통령 하나를 포함해 최소 6명에 이른다. 헌법 제232조(b)는 방위군최고사령관이 국방장관, 내무장관, 국경장관을 지명하도록 못박아두었다. 이 기형적인 조항 탓에 ‘대통령이 국방안보회의 제청과 동의를 받아 방위군 최고사령관을 임명한다’는 헌법 제342조도 있으나 마나다. 아웅산수찌 정부가 군과 경찰을 손에 쥘 수 없다는 뜻이다. 소수민족과 분쟁 상태인 현실 속에서 사회 조정기능에 치명적 한계를 지닌 셈이다. 게다가 군부의 지출과 결산은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영역이고 군사령관은 특별자금법에 따라 의회 동의 없이 독자적 사업들을 통해 무제한 자금을 끌어 쓸 수도 있다. 이게 현재 버마의 대형 프로젝트들을 모조리 군부가 쥐고 흔들 수 있는 발판이다. 아웅산수찌 정부가 경제도 맘대로 끌어가기 힘들다는 뜻이다. 결국 아웅산수찌가 군부와 권력을 나눠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보는 까닭이다. 달리 아웅산수찌가 그동안 야당 지도자로서 시민 생존이 걸린 현안들에 침묵으로 군부 손을 들어주었던 사실을 놓고 보면 이미 권력분점에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르겠다. 버마 인구 40%를 차지하는 135개 소수민족들이 겪어온 불평등과 차별 문제에서도, 댐과 광산을 비롯한 대형 개발 프로젝트들이 불러온 환경파괴 문제에서도, 인종·종교분쟁으로 튀어오른 로힝자 무슬림 살해사건에서도, 얼마 전 교육개혁을 외친 대학생들이 줄줄이 잡혀가는 현실에서도 아웅산수찌는 눈을 감았고 입을 닫았다. 아웅산수찌-탄슈웨 밀월정부를 미리 보는 까닭이다. 민족민주동맹에 표를 던진 시민 80%가 결코 원치 않는 시나리오겠지만, 아무튼. 의회 밖에서 군부 압박해야 하는데 결국 버마 정치는 본질적으로 헌법을 뜯어고쳐야 온전해진다. 근데 헌법 제436조(a)는 의회 75% 이상 동의를 얻어야 개헌 발의를 할 수 있다고 박아두었다. 군부가 25% 지정석을 차지한 현실에서 개헌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50년 넘게 권력을 주물러온 군부가 갑자기 자신들의 안전판을 떼버리고 사라질 것이라 여기는 건 지나친 낭만이다. 여기서 아웅산수찌가 지닌 60% 의석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아웅산수찌가 개헌을 원한다면 그리하여 정치를 정상으로 되돌리고 싶다면 시민사회의 지원을 받아 의회 밖에서부터 군부를 압박하는 게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소수민족해방세력이나 민주혁명조직들뿐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밀실정치, 독선정치, 불통정치 챔피언으로 떠오른 아웅산수찌를 향한 불만만 높아가고 있다.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 의장 탄케는 “아웅산수찌 하면 자동으로 독재자가 떠오른다”고 했고, 까렌민족연합(KNU) 전 부의장 데이비드 타까보는 “민주독재” 가능성을 말하면서 “도둑을 잡고자 도둑을 놓는 꼴이 될까 무섭다”고도 했다. 누가 아웅산수찌한테 이 버마 설화를 들려줄 수 있을까? “한 왕자가 나타나 괴물한테 고통받던 골짜기 마을을 해방시키자 사람들은 그 보답으로 통치권을 주었으나 그 왕자는 곧 사라져버렸고 더 나쁜 괴물이 나타났다. 또 다른 전사가 나타나 괴물을 해치우면 더 나쁜 괴물이 또 나타나기를 되풀이. 해서 마을 젊은 지도자가 나서 괴물을 해치운 뒤 찾아간 한 환상적인 동굴에는 온갖 보석과 여인들이 넘쳐났다. 시간을 잊고 즐기던 그이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 얼굴이 괴물로 변한 사실을 보면서 결국 부와 권력이 자신을 부패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필자의 요청에 따라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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