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케임브리지대 등 연구진 주장
1만년전 케냐 유골서 학살 흔적
다른 지역 집단 무기에 공격당해
저장 식량 등 자원 약탈 싸움 해석
1만년전 케냐 유골서 학살 흔적
다른 지역 집단 무기에 공격당해
저장 식량 등 자원 약탈 싸움 해석
인류는 언제부터 ‘전쟁’을 했을까?
크게 두 가설이 있다. 첫째는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뒤 잉여생산물이 생기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침팬지들이 무리를 이뤄 서로 싸우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전쟁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주장이다. 농경을 시작하기 전부터 전쟁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20일 과학잡지 <네이처>온라인판에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때 전쟁을 했다는 논문이 실려 둘째 가설을 뒷받침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케냐 투르카나 베이슨 연구소가 발표한 이 논문은 케냐 북부 투르카나 호수 주변에서 발견된 1만년 전 유골들을 연구해 인류가 수렵·채집을 하던 시절에도 전쟁을 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이 투르카나 호수 주변에서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유골 12구를 조사해보니, 이 가운데 10구에서 누군가에게 학살당한 흔적이 발견됐다. 남성 1명은 머리에 화살을 최소 2개를 맞았고 무릎을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흔적이 나왔다. 여성 1명의 유골에서는 머리를 가격당한 흔적이 나왔다. 발견 당시 유골의 자세로 봐서는 이 여성은 살해당하기 전 손발이 묶여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온전한 형태로 발견된 유골 12구 외에도 적어도 15명 정도의 유골이 더 나왔다. 최소 27명으로 이뤄진 집단이 다른 수렵·채집 집단에게 학살당한 듯 보인다. 크기가 다른 곤봉 여러 개와 활, 돌칼이 무기로 사용된 흔적이 나왔다. 연구자들은 공격을 한 이들이 다른 지역에서 왔다고 추정했다. 유골이 발견된 지역에는 흔하지 않은 흑요석이 학살 현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투르카나 호수는 지금보다 면적이 컸으며 비옥했던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는 옹기도 출토됐는데, 이는 선사시대 이 지역 사람들 중 일부가 식량을 저장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장 식량 등의 주요 자원을 약탈하기 위해 집단끼리 서로 죽이는 일이 벌어졌을 수 있다. 저자들은 결론으로 이번 연구가 “전쟁은 선사시대 수렵·채집 집단 사이에 자주 벌어지던 일들 중 하나였다는 증거”를 보여준다고 적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침팬지의 행동을 통해 인류 전쟁의 진화적 뿌리를 찾는 연구를 하고 있는 루크 글로바키 박사는 이 논문에 대해서 “전례가 없는 연구”라며 “전쟁이 농업 발명 이전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그러나 미 앨라배마대학 인류학과 교수인 더글라스 프라이는 이번 연구가 선사시대에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학살한 증거로는 보이지만, 전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프라이 교수는 전쟁이라고 부르려면 “요새, 전쟁에만 사용한 도구, 전쟁을 묘사하는 상징 등이 있어야 한다”며 복잡한 사회를 구성하지 못한 수렵·채집인이 전쟁까지 벌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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