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현지시각) 영국 링컨셔 주의 휴양도시스케그네스 해변에 죽은 향유고래 한 마리가 떠밀려 와 있다. 링컨셔 주 해변에는 지금까지 같은 무리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향유고래 5마리가 떠밀려 왔다. 사진 스케그네스 AP=연합뉴스
지난 22일(이하 현지시각) 영국의 동부 해안인 노퍽주 헌스탄톤 바닷가에서 향유고래 한 마리가 발견됐다. 이 고래는 발견 하루 만에 숨졌다. 24일에는 영국 동부 해안 링컨셔주 스케그네스 바닷가에서 향유고래 세 마리가 숨진 채 발견됐다. 25일에도 스케그네스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웨인플리트 바닷가에 또 다른 향유고래 한 마리가 숨져 있었다.
뿐만 아니다. 지난 12일엔 네덜란드 북부 해안인 텍셀섬 바닷가에서 향유고래 다섯 마리가 심하게 다친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은 곧 숨졌다. 그 전엔 독일 북부 해안가 반게로게섬에서 폐사한 향유고래가 발견됐다. 1월에만 영국과 네덜란드, 독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향유고래가 모두 17마리다.
특히 이 향유고래들은 외모가 흡사하다. 전문가들은 함께 무리를 지었던 개체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고 있다. 향유고래 한 무리가 북해 바다에서 함께 이동하다 어떤 문제점에 봉착해 부상을 입고 떠내려온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된다. ‘더 친절한 기자들’에서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비비시(BBC)> 등에 실린 전문가들의 견해를 바탕으로 향유고래 집단폐사 원인을 짚어봤다.
1. 향유고래는 어떤 동물인가
향유고래는 최대 몸길이가 20m에 달한다. 수컷의 경우 몸무게가 60t 정도, 암컷은 45t 정도에 이른다. 향유고래는 심해에서 생활하는 포유류다. 잠수력이 뛰어나 1시간 동안 잠수할 때가 있을 정도다. 대체로 수심 3000m 인근에서 먹이를 찾는 걸로 알려져 있다. 수심 2200m 해저의 전선에 걸린 채 발견된 적도 있다.
이들은 주로 오징어를 먹는다. 때로 물고기도 먹는다. 거대한 머리에서 품질 좋은 기름을 얻을 수 있다. 대장에 덩어리 형태로 생기는 생성물이 안정제로 쓰이는 값비싼 향료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남획되는 까닭이다. 멸종위기종에 지정돼 있다. 북해 지역에선 주로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 영국 셰틀랜드 군도 주위에서 발견된다.
2. 향유고래 집단폐사는 자주 있는 일인가
영국의 경우 향유고래의 폐사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대체로 1년에 한 건 정도 발생해왔다. 이 숫자는 1980년대 이후 한 해 6마리 정도로 늘었다. 인간이 환경을 오염시키면서 향유고래의 폐사가 늘어난 걸까?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그렇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한다. 그것보단 포경이 금지된 이후 개체 수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견해다.
포경이 금지된 이후 사람들에게 향유고래가 목격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이 견해를 뒷받침한다. 하지만 이번 집단폐사는 기록을 시작한 1913년 이후 영국 해안가에서 발생한 고래 폐사 사건 가운데 최악이다.
네덜란드 북부 텍셀 섬 해안에서 폐사한 채 발견된 향유고래. (EPA=연합뉴스)
3. 향유고래는 먹이가 없어서 숨졌나
학자들은 네덜란드에서 숨진 채 발견된 향유고래를 부검했다. 향유고래의 장은 길이가 170m나 된다.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보다 길다. 이들의 장에선 오징어의 부리와 아귀의 뼈 등이 발견됐다. 이건 향유고래들이 숨질 당시 배고픈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두 마리의 항유고래 뱃속에선 낚싯줄과 낚시바늘도 발견됐다. 낚싯배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던져 놓은 그물 속 고기를 향유고래들이 먹었다는 뜻이다. 집단폐사의 원인이 적어도 배고픔은 아니라는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향유고래들은 발견 당시 몸 상태가 좋았다. 탈수 상태도 아니었다. 배와 부딪힌 흔적도 없었다. 낚시 그물에 걸린 흔적도 없었다. 하지만 향유고래들은 부상을 당해 피를 흘리다 숨졌다. 여전히 인간의 어떤 잘못에 의해 집단폐사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견이 조심스레 나온다.
※ [주의] 영상 중간에 잔인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4. 향유고래들은 군사 훈련 때문에 숨졌나
네덜란드에서 숨진 채 발견된 향유고래들에 대한 부검에서 뇌에 대한 부검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질병이 폐사의 원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른 원인이라면, 갑작스런 소음이 이들을 위협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해군의 군사 훈련에서 모의 폭발이 있었다면, 향유고래들에게 큰 피해가 갔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비슷한 사례가 2011년 이미 발생한 적이 있다. 영국 해군이 해저에서 열린 군사 훈련에서 4개의 폭탄을 터뜨렸다. 19마리나 되는 둥근머리돌고래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집단폐사가 발생한 시점이 한겨울이라는 점에서, 군사 훈련이 수행됐을 가능성이 작다고 말하고 있다.
5. 북해의 풍력발전과 석유굴착 때문에 방향을 잃었을까
향유고래는 심해에서 초음파를 이용해 길을 찾는다. 물속에서 음파를 보낸 뒤 그 음파가 먼 곳에 있는 해저면에 닿았다가 돌아오는 신호를 이용해 길을 찾는다.
일부에선 향유고래가 방향을 잃은 이유가 북해에 곳곳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나 석유굴착기의 소음 때문은 아니냐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다. 이런 인위적인 소음이 향유고래들의 음파 탐지를 방해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작다고 보고 있다.
풍력발전소의 경우 건설 기간 동안에는 말뚝 박기 등을 하면서 발생하는 소음 때문에 해양 포유류의 생활환경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있다. 하지만 건설된 뒤에는 인공어초 등으로 물고기를 풍부하게 만들어 되레 생존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더 많다.
6. 향유고래들은 길을 잘못 들어 폐사했나
결국 지금까지 가장 신빙성 있게 제기된 집단폐사 원인은 향유고래들이 길을 잃고 얕은 바다에 오게 되면서 부상을 입고 숨진 것 아니냐는 추정이다.
수심이 얕으면 향유고래들이 방향을 잃게 된다. 향유고래의 초음파 탐지가 영국 인근 해변처럼 수심이 얕은 경우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르웨이 인근 해역에서 향유고래들이 먹이인 오징어떼를 따라나섰다가 실수로 수심 급변 지역을 지나 북해로 들어온 뒤 얕은 바다에서 길을 잃고 숨진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오는 이유다. 영국 주변 해변의 깊이는 제일 깊은 곳이 수심 200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향유고래가 이런 얕은 바다에 내몰릴 경우, 이들에게 가장 큰 위협은 다름 아닌 그들의 큰 몸집이다. 얕은 물에선 이들이 스스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그 무게가 고스란히 내장에 가해진다. 각종 기관들을 파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가설은 이번에 발견된 향유고래들의 부상 상태를 잘 설명해준다.
하지만 문제가 남는다. 인간은 길을 잃고 얕은 바다로 몰리는 향유고래를 위해 해저환경을 고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현재까진 누구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못하고 있다.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