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협조로 쿠바 수도서 이뤄져
교황과 러시아 정교회 수장이 동·서방 교회가 분리된 지 약 1천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다. 이번 만남은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협조로 오는 12일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이뤄진다.
바티칸과 러시아 정교회는 5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과 키릴 총대주교의 역사적인 만남 일정을 공식 발표했다. 역대 교황들이 터키를 방문해 동방 정교회 총대주교를 만난 적은 있지만, 동방 정교회에서 최대 교파를 가진 중핵인 러시아 정교회 수장과 대면하는 것은 1054년 교회 분열 후 이번이 처음이다.
11일 멕시코를 방문할 예정인 교황은 12일 키릴 총대주교를 만나기 위해 아바나를 찾는다. 마침 키릴 대주교는 11일부터 쿠바를 시작으로 남미를 순방할 예정으로 있다. 두 수장의 만남은 아바수의 관문인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에서 이뤄지며 만남 시간은 약 2시간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수장은 두 교회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할 예정이다.
이번 만남은 2013년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련의 화해 행보의 일환으로 보인다. 물론 전임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나 베네딕토 16세도 러시아 정교회 총대주교와의 만남을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바티칸 교황청의 페데리코 롬바르디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만남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소 2년 동안 관련 논의가 오갔다”고 말했다.
특히, 두 수장이 아바나에서 만나게 돼 쿠바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쿠바는 가톨릭 교회의 뿌리가 깊은 곳이다. 쿠바는 1959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종교 활동을 사실상 금지했다가 1992년부터 허용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98년 쿠바 방문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당시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공항에 나가 영접했고, 혁명광장에서 열린 미사엔 100만명이 참석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2년 방문했을 때는 피델의 동생으로 현 국가평의회 의장인 라울 카스트로가 2900명의 죄수를 사면하고 사형제를 폐지했다. 하이메 오르테가 쿠바 추기경은 2011년 정치범 석방을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에서 중재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만에 국교정상화를 이룬 데 중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라울 카스트로 의장이 만남 장소를 제공하는데 직접 나섰다. 롬바르디 대변인은 “카스트로 의장이 만남을 이루는데 관여를 했다”고 밝혔다.
동방 정교회는 1054년 로마 가톨릭과 결별한 뒤 동유럽과 러시아 등지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며, 그리스 정교회와 러시아 정교회 등 지역별 종파를 갖고 있다. 이중 러시아 정교회 신도 수는 전 세계 동방 정교회 신도 2억5천만명 중 절반 이상(1억6천500만 명)을 차지해 영향력이 남다르다. 러시아 정교회가 로마 가톨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교세를 확장하려는 데 거부감을 가져왔다. 그러나 바티칸이 2009년 러시아와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2005년에는 교황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만났다.
박현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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