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5일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개국 정상들을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서니랜즈로 초청한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화두는 남중국해 문제였다. AFP 연합뉴스
[토요판] 정문태의 제3의 눈
(64) 아세안
(64) 아세안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는 실패나 성공으로 다룰 주제가 아니다. 서구중심주의에 맞서 아시아 사회가 공존을 향해 길을 찾아가는 한 방법이다. 유럽의 가치는 가장 큰 놈이 모든 걸 다 먹는다. 우린 모두가 고루 나누길 바란다. 이게 아시아적 가치의 뿌리다.”
요즘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을 낀 국제정치를 보면서 말레이시아 전 총리 마하티르가 인터뷰 때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하티르와 싱가포르 전 총리 리콴유가 서로 제 말이라고 우기기까지 했던 아시아적 가치는 인권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사회, 경제, 문화적 권리와 주권과 불간섭 원칙을 내세웠던 1993년 이른바 방콕선언의 뼈대였다. 그 아시아적 가치는 경제적으로 한창 잘나가던 1990년대 초 바로 아세안의 가치이기도 했다. 그러다 1997년 아시아에 몰아친 경제위기 때 아시아적 가치가 지역사회를 구원할 만한 대안이 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숙지고 말았지만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논쟁거리였다. 아시아적 가치를 폐쇄정치의 변명이라고 삿대질했던 미국과 유럽한테 결국 돈싸움에서 밀리면서 더 이상 말발이 먹히지 않았고 이제 누구도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이가 없다. 한때 아세안이 그토록 열광했던 아시아적 가치의 정체는 뭘까?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에 대한 지원
지난주 서울이 온통 북핵 문제로 들끓던 사이 세상은 아세안을 끼고 숨가쁘게 돌아갔다.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는 15일과 16일 이틀 동안 아세안 10개국 정상을 캘리포니아로 불러들였다. 으레 남중국해를 낀 안보문제가 화두였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놓고 중국과 부딪쳐온 베트남 총리 응우옌떤중은 오바마한테 “(중국을 향해) 보다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행동”과 “미국의 대베트남 무기수출 금지를 풀라”고 요구했다. 오바마는 5월 베트남 방문 계획으로 화답했다. 2013년 헤이그 중재재판소로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끌고 간 필리핀과 일부 영유권을 주장해온 말레이시아와 브루나이도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역할을 다그쳤다. 앞서 1월 말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의 방문에 고무된 라오스 차기 대통령으로 뽑힌 현 부통령 분냥 워라치트는 “아세안이 하나로 뭉쳐 해상권을 보호하고 군사화와 분쟁을 피하겠다”며 아세안 의장국으로 중재자 노릇을 다짐하면서 미국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오바마와 그 손님들은 회담 끝에 ‘1982년 유엔해상법협약에 따라 위협과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한다’며 중국을 맞대고 겨냥하지는 않았지만 읽기에 따라 집단 협박 같은 성명서를 내놨다. 곧장 중국 외교부는 “남중국해와 관련이 없는 지역 바깥 나라들은 군사적 위력을 보이지 말고 지역 관련국들을 합동군사훈련으로 부추기거나 제3국을 목표물로 초계 행위를 하지 말라”고 강하게 맞받아쳤다.
그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대리인을 자임해온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 사이에도 그 무렵 설전이 벌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 외무장관 줄리 비숍은 중국 방문에 이틀 앞서 15일 지역 안보 문제와 290억달러어치 잠수함 구입건을 들고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모든 당사국들이 남중국해 섬에서 무장을 멈춰야 한다”며 중국을 겨냥했다.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일본과 군사협력 강화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객관적이고 편견 없는 태도를 보이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17일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중국 국경전쟁 37주년을 맞아 “중국을 타도하자. 중국 침략을 타도하자”란 반중국 정서가 터져 나왔다. 같은 날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는 중국이 베트남과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남중국해 우디섬에 지대공미사일을 깔았다며 “날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무장을 늘리는 모든 증거를 심각하게 여긴다”고 핏대를 높였다.
그런가 하면 미국이 이끄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뛰어들지 않았던 타이와 인도네시아 쪽에서는 가입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브루나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참가를 다그치는 소리가 아주 높아진 한 주이기도 했다.
아세안 10개국 정상 부른 오바마
남중국해 낀 안보문제가 화두
중국은 여전히 미국 협공 아래
수세에 몰렸음을 보여준 한주 인구 6억2500만에 정체성 각각인
아세안을 하나로 묶긴 비현실적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21세기 결전장으로 말려드는 낌새 그렇게 딱 일주일 동안 아세안을 낀 국제사회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미국의 중국포위(encircle China) 정책과 전략들이 총출동한 한 주였던 셈이다. 2011년 오바마가 아시아·태평양의 세기에서 말한 미국의 아시아 복귀(return to Asia) 정책이나 힐러리 클린턴이 정리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추축(strategic pivot) 전략이 현실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게다가 2010년 펜타곤(미 국방부1)이 공식적으로 들고 나선 공해전(Air-Sea Battle) 군사전략까지 속살을 드러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의 군사적 지원이었다. 으레 제2차 세계대전 뒤부터 미국이 아시아를 떠난 적이 없어 그 아시아 복귀란 게 새로운 정책으로 보기도 힘들고 전통적인 공-육전(Air-Land Battle)에서 따온 그 공-해전이 개념에 지나지 않지만 미국은 펜타곤 안에 중국통합팀(China Integration Team)을 만들어 잠재적 적이 중국인 것만큼은 또렷이 했다. 그사이 미국은 버마와 라오스를 뺀 8개 아세안 회원국과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중국을 자극해왔다. 미국은 2009년부터 중국 포위에 뚫린 마지막 구멍 2개였던 버마와 라오스에 매달렸다. 그해 1월 오바마는 버마 군사정부와 건설적인 관계설정 가능성을 입에 올리며 밀담을 벌여나갔고 6월 들어 라오스를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 명단에서 지운 정상적인 외교·경제관계를 맺었다. 그로부터 버마는 급격히 미국 쪽으로 쏠렸고 라오스는 그동안 중국으로 기울었던 현 서기장이자 대통령인 춤말리 사야손이 1월 말 연임을 포기하면서부터 친미 기운을 뿜고 있다. 결실을 거둔 미국이 아세안을 손에 쥐었다는 뜻이다. 중국은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전통적인 중국봉쇄정책(China Containment Policy)이라며 만만찮게 대들어왔다. 2020년쯤 세계 최대 투자국이 될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 돈의 위력을 앞세워 아세안에 큰 공을 들여왔고 그사이 버마, 라오스, 타이의 최대 투자국으로 떠오르며 정치적 영향력도 키워왔다. 그러나 지난주 뉴스는 중국이 여전히 미국의 협공 아래 수세에 몰려 있는 현실을 잘 보여주었다. 그 정상회담은 그저 공무원들 잔치 이제 문제는 아세안 자신들이다. 아세안은 베트남전쟁이 한창 달아오르던 1967년 인도네시아, 타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다섯 나라가 반공블록으로 판을 벌인 뒤 1990년대를 거치면서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버마, 캄보디아를 차례로 받아들여 오늘날 10개 회원국으로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아세안이 내세운 하나의 시각, 정체성, 공동체(one vision, one identity, one community)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스럽다. 정상회담을 비롯해 한 해 600회가 넘는 회의로 해가 뜨고 지는 아세안을 적잖이 취재했던 내겐 그저 세금을 축내는 공무원들 여행이고 잔치였던 기억뿐이다. 온갖 멋들어진 말만 토했을 뿐 끝나고 돌아가면 그만인 게 아세안 회의였다. 인구 6억2500만을 거느린 아세안을 ‘하나’로 묶겠다는 건 처음부터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었던가 싶다. 유럽연합에 견줘 인종, 언어, 종교 같은 사회적 동질성이 옅은데다 빈국과 부국 사이에 경제적 차이가 심하고 무엇보다 정치체제가 어지럽기 짝이 없는 탓이다. 절대왕정 브루나이, 군사독재 버마, 사회주의 라오스와 베트남, 쿠데타로 얼룩진 입헌군주제 타이, 일인독재 캄보디아, 세습독점 싱가포르, 일당독재 말레이시아가 한 지붕 밑에 모여 사는 꼴이다. 그나마 오랜 독재 끝에 민주화로 접어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빼고 나면 아세안 정치에는 시민이 보이질 않는다. 아세안이 체제와 권력 유지용 도구로 의심받아온 까닭이다. 예나 이제나 그 아세안이 목매달았던 상호 불간섭이라는 아시아적 가치의 정체도 드러난 셈이다. 시민 없는 정치를 전체주의라 불렀고 그 전체주의의 마지막 길은 늘 전쟁이었던 사실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연간 5조달러어치 무역선이 지나고 원유를 비롯한 막대한 천연자원이 깔린 것으로 알려진 남중국해를 낀 미국과 중국의 21세기 결전장으로 아세안이 서서히 말려드는 낌새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까닭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 정문태 1990년부터 타이를 베이스 삼아 일해온 국제분쟁 전문기자. 26년간 아프가니스탄·이라크·코소보를 비롯한 40여개 전선을 뛰며 압둘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등 최고위급 정치인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저서로 <전선기자 정문태 전쟁취재 16년의 기록>(2004년), <현장은 역사다>(2010년)가 있다. 격주로 국제뉴스의 이면을 한겨레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남중국해 낀 안보문제가 화두
중국은 여전히 미국 협공 아래
수세에 몰렸음을 보여준 한주 인구 6억2500만에 정체성 각각인
아세안을 하나로 묶긴 비현실적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21세기 결전장으로 말려드는 낌새 그렇게 딱 일주일 동안 아세안을 낀 국제사회에서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한마디로 미국의 중국포위(encircle China) 정책과 전략들이 총출동한 한 주였던 셈이다. 2011년 오바마가 아시아·태평양의 세기에서 말한 미국의 아시아 복귀(return to Asia) 정책이나 힐러리 클린턴이 정리한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추축(strategic pivot) 전략이 현실 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게다가 2010년 펜타곤(미 국방부1)이 공식적으로 들고 나선 공해전(Air-Sea Battle) 군사전략까지 속살을 드러냈다. 그 핵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의 군사적 지원이었다. 으레 제2차 세계대전 뒤부터 미국이 아시아를 떠난 적이 없어 그 아시아 복귀란 게 새로운 정책으로 보기도 힘들고 전통적인 공-육전(Air-Land Battle)에서 따온 그 공-해전이 개념에 지나지 않지만 미국은 펜타곤 안에 중국통합팀(China Integration Team)을 만들어 잠재적 적이 중국인 것만큼은 또렷이 했다. 그사이 미국은 버마와 라오스를 뺀 8개 아세안 회원국과 합동군사훈련을 하면서 중국을 자극해왔다. 미국은 2009년부터 중국 포위에 뚫린 마지막 구멍 2개였던 버마와 라오스에 매달렸다. 그해 1월 오바마는 버마 군사정부와 건설적인 관계설정 가능성을 입에 올리며 밀담을 벌여나갔고 6월 들어 라오스를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 명단에서 지운 정상적인 외교·경제관계를 맺었다. 그로부터 버마는 급격히 미국 쪽으로 쏠렸고 라오스는 그동안 중국으로 기울었던 현 서기장이자 대통령인 춤말리 사야손이 1월 말 연임을 포기하면서부터 친미 기운을 뿜고 있다. 결실을 거둔 미국이 아세안을 손에 쥐었다는 뜻이다. 중국은 미국의 이런 움직임을 전통적인 중국봉쇄정책(China Containment Policy)이라며 만만찮게 대들어왔다. 2020년쯤 세계 최대 투자국이 될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 돈의 위력을 앞세워 아세안에 큰 공을 들여왔고 그사이 버마, 라오스, 타이의 최대 투자국으로 떠오르며 정치적 영향력도 키워왔다. 그러나 지난주 뉴스는 중국이 여전히 미국의 협공 아래 수세에 몰려 있는 현실을 잘 보여주었다. 그 정상회담은 그저 공무원들 잔치 이제 문제는 아세안 자신들이다. 아세안은 베트남전쟁이 한창 달아오르던 1967년 인도네시아, 타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다섯 나라가 반공블록으로 판을 벌인 뒤 1990년대를 거치면서 브루나이, 베트남, 라오스, 버마, 캄보디아를 차례로 받아들여 오늘날 10개 회원국으로 모습을 갖췄다. 그러나 아세안이 내세운 하나의 시각, 정체성, 공동체(one vision, one identity, one community)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스럽다. 정상회담을 비롯해 한 해 600회가 넘는 회의로 해가 뜨고 지는 아세안을 적잖이 취재했던 내겐 그저 세금을 축내는 공무원들 여행이고 잔치였던 기억뿐이다. 온갖 멋들어진 말만 토했을 뿐 끝나고 돌아가면 그만인 게 아세안 회의였다. 인구 6억2500만을 거느린 아세안을 ‘하나’로 묶겠다는 건 처음부터 이상적인 구호가 아니었던가 싶다. 유럽연합에 견줘 인종, 언어, 종교 같은 사회적 동질성이 옅은데다 빈국과 부국 사이에 경제적 차이가 심하고 무엇보다 정치체제가 어지럽기 짝이 없는 탓이다. 절대왕정 브루나이, 군사독재 버마, 사회주의 라오스와 베트남, 쿠데타로 얼룩진 입헌군주제 타이, 일인독재 캄보디아, 세습독점 싱가포르, 일당독재 말레이시아가 한 지붕 밑에 모여 사는 꼴이다. 그나마 오랜 독재 끝에 민주화로 접어든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을 빼고 나면 아세안 정치에는 시민이 보이질 않는다. 아세안이 체제와 권력 유지용 도구로 의심받아온 까닭이다. 예나 이제나 그 아세안이 목매달았던 상호 불간섭이라는 아시아적 가치의 정체도 드러난 셈이다. 시민 없는 정치를 전체주의라 불렀고 그 전체주의의 마지막 길은 늘 전쟁이었던 사실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연간 5조달러어치 무역선이 지나고 원유를 비롯한 막대한 천연자원이 깔린 것으로 알려진 남중국해를 낀 미국과 중국의 21세기 결전장으로 아세안이 서서히 말려드는 낌새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는 까닭이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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