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공개한 루마니아 남부 데베셀루 미사일 방어 기지의 모습.
국제 초점 I 미, 동유럽에도 MD 기지 구축
유럽선 ‘이란 방어용’ 명분 MD
러, 자국 핵억지력 무력화 의심 반발
‘언제든 군사적 공격’ 위협도
동북아선 ‘북한 때문’ 이유 내세워
전문가 “장기적으로 중국도 대상”
중·러 ‘MD 맞설 무기개발’ 예측도
유럽선 ‘이란 방어용’ 명분 MD
러, 자국 핵억지력 무력화 의심 반발
‘언제든 군사적 공격’ 위협도
동북아선 ‘북한 때문’ 이유 내세워
전문가 “장기적으로 중국도 대상”
중·러 ‘MD 맞설 무기개발’ 예측도
지난해 12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서 약 145㎞ 떨어진 남부 데베셀루에 미국이 미사일 방어(MD) 기지를 완공했다. 미국은 동유럽 한복판에 설치된 미사일 방어 기지에 대해서 이란 미사일 방어용이라고 했지만, 러시아 외무부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위험한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러시아는 이전부터 동유럽에 미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이 설치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며, 동유럽에 설치된 미사일 방어 기지를 군사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해왔다.
미국이 최근 한국에 고고도 미사일방어 체계(THAAD·사드) 배치 논의를 본격화하면서 동북아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동유럽에선 미국이 이 지역에 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을 본격 시도한 2000년대 중반부터 이 문제를 놓고 미국과 러시아 간 갈등이 시작돼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를 구축하는 의도를 둘러싼 양국간 불신이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탓이다.
미국이 데베셀루 미사일 방어 기지에 들여온 설비는 스파이(SPY)-1 레이더와 엠케이(MK)41 수직발사대다. 스파이-1 레이더는 미 해군 이지스 전투체계의 중심이 되는 레이더다. 위상배열 레이더로, 컴퓨터로 빔 조향 방향과 조향량을 조절할 수 있다. 의심 표적을 집중적으로 추적할 수 있고, 다수의 목표물을 탐지 식별할 수 있다. 엠케이41 수직발사대는 미사일 요격용 스탠더드(SM)-3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장치다. 스탠더드-3 미사일은 원래는 함정 방위용 미사일인데, 사거리가 500㎞에 이른다. 스파이-1 레이더와 엠케이41 수직발사대 모두 이지스함 무기 체계를 육상용으로 전환한 것이다.
데베셀루 기지는 올해 상반기까지 점검을 마치고 운용에 들어갈 예정인데, 운용 준비 임무를 맡은 것도 미 해군 6함대다. 6함대는 “데베셀루 기지 시스템 운용의 감독과 훈련을 담당할 것이다. 새 배를 가지고 해상훈련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며 “2016년 여름까지면 데베셀루 기지 운용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가 데베셀루 기지에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는 미국이 전통적인 러시아 세력권이었던 동유럽 한복판에 미사일 방어 기지를 세워 러시아의 핵억지력을 무력화하려 한다는 의심 때문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독일 통일을 지원했던 이유는 미국과 서유럽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동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소련 붕괴 이후 소련 주도 바르샤바조약기구는 해체되고 나토의 동진은 계속되고 있다. 나토의 동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한 원인 중 하나였다.
러시아 외무부는 데베셀루 기지의 완공이 ‘중단거리 핵미사일 폐기조약’(INF)을 직접 위반한 것이라고 미국을 비난했다. 이 조약은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양국이 보유한 핵탄두 장착용 중거리와 단거리 지상발사 미사일을 폐기하기로 합의한 역사적인 핵무기 감축 조약이다. 러시아는 데베셀루 기지에서 발사될 수 있는 스탠더드형 미사일이 러시아를 겨눌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의 불신은 미국의 유럽 미사일 방어 계획(EPAA)이 탄생할 때부터 계속됐다. 이 계획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이란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유럽을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추진됐다. 2002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나토 회의에서 논의되기 시작했으며, 2008년 조지 부시 행정부 때까지만 해도 폴란드에 장거리 요격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고 체코에 레이더 기지를 만든다는 게 뼈대였다.
장거리 요격용 미사일을 배치하겠다는 미국의 계획에 러시아는 군사적 강수로 맞섰다. 2008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폴란드와 가까운 러시아 칼리닌그라드주에 사거리가 500㎞에 이르며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2009년 새로 들어선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폴란드 등에 대한 미사일 방어 기지 구축 계획을 취소한다고 발표하자, 러시아도 칼리닌그라드에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배치하는 방안을 철회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09년 새로운 유럽 미사일 방어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이지스함 운용을 중심에 두고 이지스함 시스템을 육상에도 적용한 이지스 어쇼어를 육상 기지에 설치하는 내용이 뼈대다. 1단계가 2011년까지 미사일 방어 이지스함 운용 능력을 높이고 지중해에도 증강 배치하는 것이며 2단계가 루마니아에 이지스 어쇼어인 데베셀루 기지를 세우는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 시절 유럽 미사일 방어 계획에 들어 있던 체코 레이더 기지 설치 계획은 군사적 활용도가 떨어지는 위성정보분석센터로 대체하기로 하면서, 체코가 이에 반발해 미국 미사일 방어 계획에서 이탈했다. 3단계가 2018년까지 예정된 폴란드 육상 미사일 방어 기지 설치다. 원래는 4단계로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중장거리 요격미사일 ‘스탠더드-3 IIB’를 배치할 계획이었는데, 2013년 러시아의 반발 때문에 4단계는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러시아는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 계획만 변경됐을 뿐 여전히 위협적이라고 여기고 있다. 2012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모스크바에서 나토 관계자들에게 미사일 방어 계획에 대한 러시아 반응이 “아직까지는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형태다. 하지만 특정한 상황에서는 우리는 기술적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당신들이 좋아할 만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제든지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실제 러시아는 2009년 철회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의 칼리닌그라드 배치 계획을 꾸준히 들고나오며 유럽을 위협했다. 지난해 4월에도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 군참모총장은 “미사일 방어 설비가 가동되고 있는 곳은 우선 대응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루마니아와 폴란드가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이 애초 유럽 미사일 방어 계획의 명분으로 내세운 이란의 미사일 위협이 지난해 이란 핵 협상 타결로 대폭 감소했는데도, 이 계획을 계속 추진하는 것도 러시아의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란 핵 프로그램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엄격한 통제 아래 들어갔다면, 미국의 유럽 미사일 방어 계획의 필요성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유럽 미사일 방어에 대한 우리의 계획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유럽 미사일 방어 계획이 대이란용 이외의 다른 의도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다른 지역으로도 확대일로에 있다. 미국은 최근 몇 년 동안 페르시아만 국가들한테 집중적으로 미사일 요격 체계를 팔아왔다. 이 지역 국가들 상당수가 단거리 미사일 요격용 패트리엇 미사일을 배치했으니 장거리 요격용도 구매할 계획이 있을 것으로 미국은 봤다. 실제 2011년 아랍에미리트(UAE)는 사드를 35억달러에 도입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미사일 방어 전문가인 스티븐 힐드레스는 군축 관련 전문지인 <암스 컨트롤 투데이>에 “(동북아) 미사일 방어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도 장기 관점에서 (미국의) 고려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 확장이 자신들의 전략적 힘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보며, 이 때문에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에 맞설 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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