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개봉한 영화 <트루 라이즈>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미 국무도 영화사 경영진과 만나
IS에 대항할 강력한 무기로 활용
‘트루라이즈·’ ‘비상계엄’…‘스나이퍼’ 등
9·11 이후엔 테러집단 이미지 심화
무슬림 이미지 왜곡·고정관념 형성
“모든 백인 KKK로 묘사한 셈” 비판도
IS에 대항할 강력한 무기로 활용
‘트루라이즈·’ ‘비상계엄’…‘스나이퍼’ 등
9·11 이후엔 테러집단 이미지 심화
무슬림 이미지 왜곡·고정관념 형성
“모든 백인 KKK로 묘사한 셈” 비판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스튜디오 대표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슬람국가’(IS)에 대항하는 그들의 시각과 아이디어에 대해 들어서 매우 좋군요.”
지난달 16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위의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케리 장관이 만난 사람들은 유니버설, 폭스, 드림웍스 등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의 경영진이었다. 리처드 스텡걸 미국 국무부 정무차관은 “(이 만남은) 이슬람판 ‘해리 포터’ 제작을 요청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며 “세계에 미국이라는 브랜드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자리였으며, 우리 시대의 투쟁에 그들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밝혔다.
영화를 비롯한 미디어 산업은 이슬람국가를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 미국의 적에 대항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어왔다. 영국 <가디언>은 8일 이러한 미국의 전략이 아랍 국가와 무슬림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와 고정관념들을 형성해왔다고 보도했다.
1990년대 할리우드에서 무슬림을 부정적으로 다룬 영화의 계보는 유명 배우인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와 대적하는 영화 <트루 라이즈>부터, 테러에 대비해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영화 <비상계엄>까지 이어졌다. <비상계엄> 개봉 당시 영화평론가인 로저 에버트는 “영화에서 나타나는 무슬림들에 대한 편견들은 마치 1930년대 반유대주의가 소설과 언론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은밀하게 퍼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인종 문제를 다뤄온 작가 잭 섀힌은 자신의 한 책에서,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아랍인과 무슬림에 대한 1200여개의 이미지 중 97%가 동양적 미신이나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증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됐다고 지적했다.
무슬림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향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더욱 확대됐다. 할리우드 영화는 이름과 얼굴이 없는 ‘나쁜 아랍인’을 죽이는 미군의 노력을 중점적으로 드러냈고, 동시에 미국의 외교 정책이나 침략당한 아랍 국가의 현실은 영화 밖으로 밀려났다. 미국 저격수 크리스 카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무슬림은 모두 잠재적 테러리스트”라는 말과 함께 미군을 공격하려는 무슬림 여성과 아이를 저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카일은 자서전에서 “나는 오직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생각만 했다. 미국인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야만인들이 사라져야 이 세상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런던 해즈 폴른>에서 테러리스트를 죽이며 “빌어먹을 너희 나라로 꺼져라”라고 말한 주인공의 대사는 아랍 국가에 대한 혐오를 그대로 드러낸다. 전형적인 호색가 아랍 정치인을 우스꽝스럽게 나타낸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과 같은 코미디 영화에서는 잔인한 전쟁 범죄가 일어나는 아프가니스탄이 단순히 영화의 배경이자 겉치레로 묘사되기도 했다.
반극단주의 연구소 ‘무플레훈’의 설립자인 후메라 칸은 “스크린에서는 전세계 16억명의 무슬림을 채 10만명도 안 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로 묘사한다. 만약 백인을 모두 큐클럭스클랜(KKK, 백인우월주의자)인 것처럼 설명한다면 어떻겠는가”라며 “영화가 아랍인과 무슬림을 더 책임있게 묘사하다면 분위기가 바뀌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잭 섀힌도 할리우드가 흑인, 유대인, 성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 묘사를 없앤 경험을 언급하며 “무슬림을 왜곡하는 정형성을 깨부수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나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2015년 개봉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의 한 장면.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무슬림들은 인종주의자, 호색가 등 대부분 부정적 이미지로 묘사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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