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3시간반 ‘국민과의 대화’ 생중계
‘대통령 사생활’ 관련 언급 회피
‘대통령 사생활’ 관련 언급 회피
“푸틴 대통령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랑 터키 대통령이 물에 빠지면 누구 먼저 구할 거예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각) 저녁 3시간반 동안 텔레비전 생중계로 진행된 연례 ‘국민과의 대화’에서 12살 소녀 바랴그 쿠즈네트소바로부터 난처한 질문을 받았다. 러시아와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두 나라 정상 가운데 그나마 누가 더 중요한 지를 묻는 맹랑한 질문이었다. 푸틴은 “바랴그, 네가 날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하지만 “만일 누군가 물에 빠지기로 결심했다면, 이미 그들을 구하는 게 불가능할 거다. 물론 우리는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어떤 파트너에게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재치있게 답변했다.
푸틴은 외국의 위협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고 국민들을 보살피는 ‘강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매년 마라톤 국민과의 대화를 활용한다. 시청자 전화 참여와 비디오 채팅 등을 통한 ‘질의응답(Q&A)’으로 이뤄지는데, 미 <유에스에이 투데이>는 “300만통 이상의 전화가 걸려왔다”는 사회자의 말을 전했다. 옴스크주에 사는 한 여성은 비디오 채팅을 통해 대통령에게 울퉁불퉁한 도로와 먼지를 보여주면서 열악한 도로 사정을 토로했다. 옴스크주 당국자들은 5월1일까지 도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대통령 앞에서 맹세했다.
푸틴은 경제위기와 대외정책 등과 ‘국가 중대사’와 관련한 입장도 밝혔다. 푸틴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은 1.4%”라며 “러시아가 다시 탄탄한 성장 궤도에 오르려면 소비를 활성화시키고, 투자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러시아은행과 세계은행 등은 2014년 대비 반토막이 난 국제유가 탓에 이보다 덜 낙관적으로 전망한다고 미 <월스트리트 저널>은 전했다. 푸틴은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인 로즈네프트 지분을 인수할 전략적 투자자를 찾고 있다며 “헐값에 넘기지는 않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는 재정적자 타개책으로 에너지 기업 등 전략적 자산을 민영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가운데 누구를 더 선호하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푸틴은 “누가 되든 문제가 아니며, 워싱턴이 제국주의 야망을 포기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최근 폭로된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푸틴 측근들이 언급된 것과 관련해서는 “미국의 주문으로 작성된 문서로 반러 선전전의 일환”이라고 비판했다. 푸틴은 “파나마 페이퍼스와 관련한 모든 도발의 배후에 미국 국가기관이 있음을 알고 있다”며 “자료를 처음으로 공개한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도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 공보비서는 15일 “대통령 참고 문건을 만든 우리, 특히 나의 실수였다”며 “문건에 쥐트도이체차이퉁 지분과 관련한 잘못된 정보가 있었고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대통령한테 전달했다”고 <쥐트도이체차이퉁>에 공식 사과했다.
푸틴은 ‘대통령의 사생활’과 관련한 질문에는 답변을 회피했다. 재혼 계획 등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런 질문은) 환율이나 유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국민들은 일을 하라고 대통령을 뽑았다”고 넘어갔다. 이어 “언젠가는 (내 사생활에 대한) 당신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것”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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