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9월 미국 텍사스주 브라운즈빌에 미국과 멕시코의 경계를 가르는 철제 펜스가 세워져 있다. 브라운즈빌/AP 연합뉴스
멕시코 장벽을 통해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상은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25일 국토안보부를 방문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공식 서명했다. 그러나 장벽 건설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에 비해 효용은 적고, 무엇보다 트럼프의 계획처럼 장벽 비용을 멕시코가 내어줄 리 만무하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큰 문제는 우선 비용이다. 현재 미국-멕시코 국경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텍사스 남부를 따라 멕시코만까지 이어지는데, 총 길이만 서울-부산간 거리의 7배가 넘는 약 3145㎞에 이른다. 이 중 3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1000㎞ 구간에는 이미 펜스 등 여러 구조물로 경계가 구분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나머지 구간 중 자연적 경계를 제외한 1610㎞ 구간에 높이 6m 규모의 시멘트 장벽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으며, 건설 비용은 약 100억~120억달러(약 11조~12조원)로 잡고 있다.
그러나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했던 것처럼, 벽의 높이를 기존 계획보다 훨씬 높은 17m까지 설치할 경우 비용은 곱절로 늘어난다. 지형이 험준한 일부 산악 지역에 장벽을 설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또 이미 펜스가 설치돼 있는 서쪽 국경과는 달리, 텍사스주 토지는 대부분 사유지이기 때문에 토지 구입 비용이 별도로 들어간다.
이런 막대한 비용에 비해 효율이 적은 것도 문제다. 감시카메라를 비롯해 불법 이민자의 이동을 감시하는 기반 시설과 인력이 없을 경우, 장벽만으로는 불법이민자들을 통제하기 어렵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국토안보부 장관을 지낸 자넷 나폴리타노 전 장관은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15m 높이의 벽을 짓더라도, 16m 사다리를 만들어서 넘어가면 그만”이라며 장벽은 상징적 의미만 가질 뿐 효율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25일 미국 워싱턴에 자리한 국토안보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 장벽 건설에 대한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서명판을 들어보이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4월께 미 의회에서 장벽 건설 비용에 대한 법안이 통과되면 바로 공사를 시작하고, 차후 멕시코가 비용을 상환하는 방식을 구상하고 있다. 애국법의 반테러법 규정을 변경해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의 본국 송금을 막고, 비자 신청비용 인상, 멕시코 수입품에 대한 관세 부과 등의 조처를 통해 멕시코의 비용 부담을 압박하겠다는 계획이다. 트럼프는 이날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건설 계획은 이미 진행중”이라며 “장벽 건설 비용은 내가 항상 말했던 대로 전적으로 멕시코가 부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멕시코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26일 밤 텔레비전 녹화 연설에서 “국경장벽 추가 건설을 강행한 미국의 결정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국경장벽 건설에 드는 비용을 부담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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