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헤일리(가운데) 유엔주재 미국대사가 27일 뉴욕 유엔본부의 총회장 밖에서 약 40개국이 ‘핵무기 금지 조약’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핵무기 없는 세상’을 향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첫 회의부터 암초에 부닥쳤다. 몇몇 핵무기 강대국의 ‘현실론’ 앞에서 핵 폐기의 꿈은 무기력했다.
지난해 10월 유엔총회에서 123개국이 채택한 결의안에 근거한 ‘핵무기 금지 조약’의 협상 개시를 공식화하기 위한 회의가 27일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에서 열렸다. 이 협상은 핵보유국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이 주도하는 기존의 ‘핵확산 금지조약’(NPT)과 달리, “핵무기의 전면적 폐기로 나아가기 위한 법적 구속력이 있는 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이날 유엔 본부에선 미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러시아·이스라엘 등 주요 핵보유국들이 협상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회의에 불참했다. 북한 핵무기를 비난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해온 우리나라와 세계 유일의 피폭국가인 일본도 정작 ‘핵무기 금지’ 협상에는 실효성을 이유로 반대론에 가세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북한도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들이 참가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결실이 나올 수 있겠느냐”며 협상 불참 입장을 밝혔다. 이날 협상에 반대 또는 불참한 나라는 거의 40개국에 이르렀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이날 핵무기 금지 협상을 보이콧한 10여개 유엔 회원국들을 주도했다고 전했다.
또다른 핵 보유국인 중국·인도·파키스탄등은 ‘기권’했다. 반면, 스웨덴·오스트리아·아일랜드·멕시코·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핵무기의 전면금지와 완전폐기를 위한 이 협상에 앞장서고 있다. 또 수백개의 비정부기구들도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날 회의장 바깥에서 기자들에게 “나쁜 행위자들이 핵무기를 보유하도록 허용하면서, 그리고 평화와 안보를 지키려는 선한 이들의 핵무기 보유를 금지하면서 자국민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선악 이분법이다. 그는 “내 가족을 위해선 핵 없는 세상보다 더 바랄 게 없지만, 현실적이 돼야 한다”며 “북한이 핵무기 금지에 찬성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일본의 다카미자와 노부시게 대사도 “핵보유국의 개입이 없이는 국제사회의 분열만 깊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이런 현실론에 대해 스웨덴의 마르고트 발스트룀 외무장관은 “순진해지진 말자. 그러나 오늘날 핵무기 사용 위협을 포함한 위력 과시가 갈수록 많아지는 현실에서 핵금지 협상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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