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인도 델리 외곽의 한 호화 아파트에서 집주인의 횡포에 항의해 몰려든 수백여명의 가사도우미 시위대 가운데 한명이 경찰에 저지당한 채 끌려나오고 있다. NDTV 갈무리.
인도 대도시에서는 집주인 여성이 요가 수업이나 자녀 놀이모임에 간 뒤 가사도우미들이 조용히 집안일을 하는 게 일상적인 풍경이다. 도우미들은 일을 마치고 주인집 한켠의 쪽방으로 사라지거나 인근 슬럼가에 있는 깡통과 플라스틱 거처로 향한다. 인도에서 수십년간 지속된 이 ‘부조화스러운 조화’에 최근 심각한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 곪을대로 곪은 빈부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 12일 발생했는데, 수도 델리 외곽의 한 호화 아파트에서 사모님과 가사도우미가 집단적으로 충돌하는 ‘사모님 대 도우미 전쟁’이 벌어졌다.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인도 델리 외곽 노이다의 2700세대 호화 아파트에서 지난주 집주인과 가사도우미가 집단적으로 충돌했다고 15일 보도했다. 최소 150명이 넘는 도우미들이 짱돌과 쇠몽둥이를 들고 몰려와 폭력을 행사했으며, 집주인들은 모든 가사도우미들의 아파트 출입을 금지했다. 경찰은 폭력 행위에 가담한 빈민촌 주민 60명을 구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34살 교사인 집주인 하르슈 세티와 30살 도우미 조흐라 비비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지난 12일 세티는 “비비가 집에서 1만7000루피(약 30만원)를 훔쳤다”면서 “비비 본인이 1만루피를 임금으로 가져갔다고 시인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비비는 “아무 것도 시인한 적이 없다”며 오히려 세티가 지난 두달간 임금 3500루피를 주지 않고 자신을 도둑으로 몰았다고 맞섰다.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하자 세티가 비비를 때리고 감금했다는 반박이다. 비비는 “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나쁜짓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모든 게 끝났다. 모두가 그녀 얘기만 듣는다. 누구도 내 편이 아니다. 가난하다는 이유 만으로 우리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어도 되느냐?”며 분통을 터트렸다.
인도에서 집주인과 도우미의 갈등, 심지어 이 갈등에서 비롯된 범죄 사건은 흔한 일이다. 그러나 갈등이 집단적으로 충돌한 사례는 거의 알려진 적이 없다. 인도의 대도시에서는 도우미 대부분이 고용주의 집에 입주해 살고, 비슷한 처지의 이웃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기회가 없다. 도우미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집단행동으로 이어지기 힘든 구조였다. <인도의 도우미: 우리들 집의 불평등과 기회의 내부 이야기>를 쓴 언론인 트립티 라히리는 “델리 외곽의 농지에서 급증하고 있는 럭셔리 고층 아파트들이 상황을 바꾸었다”며 “도우미들의 옆에 슬럼가에 사는 이웃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우리 대 그들의 충돌이 일어나기에 완벽한 조건”이라는 설명이다.
비비의 주장을 듣고 분노한 슬럼가 이웃들은 무리를 지어 아파트로 쳐들어왔다. 세티는 “8살 아들을 학교에 보내려고 깨우고 있는데, 엄청난 무리가 ‘오늘 우리가 그녀를 죽일 것이다. 우리가 그 사모님을 죽일 것’이라고 외치면서 몰려왔다”며 공포스런 기억을 떠올렸다. 일부 도우미들은 발코니를 뛰어넘어 집으로 들어왔고, 세티는 아들과 남편을 욕실로 들여보낸 뒤 한시간반 동안 “목숨만 부지할 수 있기를” 바라며 떨어야 했다.
분노한 집주인들도 집단 행동에 돌입했다. 2700여가구 입주민들은 모든 가사도우미의 아파트 출입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더이상 도우미들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다른 입주민 맘타 판데이(50)는 “그들(도우미들)은 교훈을 배워야 한다. 만일 그들이 단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왜 못하겠는가?”라고 말했다. 판데이는 도우미를 쫓아낸 뒤 스스로 집안일을 하려고 한시간 먼저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루 청소를 용이하게 해주는 신기술 걸레도 구입할 생각이다. 그러나 아파트의 경비 담당자는 “입주민들이 지금 당장은 (도우미들의) 폭력적인 집단 공격에 매우 화나고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들은 새로운 도우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모님들이 얼마나 오래 (도우미 없이)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얘기다. <힌두스탄 타임스>는 “대부분 가족들이 수요일과 목요일에 밖에서 음식을 주문했다”며 럭셔리 아파트의 ‘도우미 없는 삶’을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인도의 부자와 빈자 사이의 ‘진짜 관계’에 대해 깊숙히 묻어둔 불안을 ‘알프레드 히치콕’ 수준으로 일깨웠다고 풀이했다. 입주민 산디아 굽타는 “집주인들은 경비원들이 가사도우미와 결탁하지 못하게 주의해야 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어 “그들(가사도우미·경비)은 우리 목에 걸린 뼈와 같다. 삼키면 안 되고, 뱉을 수도 없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상호 존중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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