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한 농부가 가뭄으로 갈라진 땅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 AFP 자료사진
농작물 성장기에 일평균 기온이 섭씨 1도씩 상승할 때마다, 인도 농부 67명이 자살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후변화로 농작물 피해가 늘어 농가 부채가 악화되는 탓인데, 지난 30년간 기후변화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이 5만9300명이라는 추산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연구팀은 지난 30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기온(변화)이 인도 자살률을 증가시킨다’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이 1967~2013년 인도 자살률과 기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특정 일의 기온이 섭씨 5도 상승할 때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인도 농민이 335명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작물 성장기 때 섭씨 1도의 기온 상승이 농민 자살자 67명 증가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연구를 진행한 태마 칼턴 연구원은 31일 영국 일간 <가디언>에 “인도에서는 자살을 범죄로 인식해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실제 자살 숫자는 보고된 수치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온과 더불어 작황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강수량의 경우, 연간 1㎝라도 늘어나면 자살률은 평균 7%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칼턴 연구원은 “2년간 강수량이 증가하면 농민 자살률이 크게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 현상이 인도 농민들의 자살률에 영향을 미친다는 또다른 근거다.
지난해 인도 농부들의 자살률은 감소했으나, 가뭄이 심했던 일부 주에서는 오히려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극심한 가뭄을 겪은 마하라슈트라에서는 올해 1~4월 사이 852명의 농부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2015년 인도 전역에서 역대 최고 수준인 1만2602명이 자살했다. 1995년 이래로 30만명 이상의 농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몇달 사이 수도 델리 중심부는 인도 농업의 ‘절망’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부들의 유골이 국회의사당 인근 잔타르 만타르 앞에 쌓여있다. 타밀 나두 지역 농민들이 시위를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이 지역 농민들은 14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최근 몇달 사이 수백명이 목숨을 끊었다.
시위대 라니 라드하크리슈난은 <가디언>에 “마른 작물보다 더 나쁜 것은 많은 농가에 닥쳐온 은행 대출”이라고 말했다. 은행에 8000루피(13만9840원)를 빚진 그의 남편은 지난 2월 은행 밖에서 독극물을 마신 뒤 숨졌다. 라드하크리슈난은 남편을 떠나보낸 다음주 은행 밖에서 루피화 뭉치를 뿌리며 외쳤다. “우리는 당신들 돈을 돌려줬다. 이제 당신들이 우리 남편의 목숨을 되돌려 줄텐가?”
지난해 인도 정부는 가뭄에 따른 작황 악화에 대비해 850억루피(약 1조4806억원) 규모의 보험을 만들어 농민 자살을 줄이기로 했다. 마하라슈트라주와 펀자브주, 인구가 가장 많은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는 공공 기금으로 농업부채를 탕감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칼턴은 “기후변화 피해를 입는 가구들을 돕는 (정부의) 개입이 없다면, 인도에서 기후변화 심화에 따라 더 많은 자살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칼턴이 <가디언>에 남긴 마지막 말은 기후변화를 고민하고 있는 전세계에 의미심장하다. “비극은 오늘날 전개되고 있다. 미래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는) 지금 당장 우리의 문제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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