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대선 잠정집계 결과가 발표된 9일(현지시각) 수도 나이로비에서 개표 조작에 항의하는 야권의 라일라 오딩가 후보 지지자가 손에 돌을 들고 뒷짐을 진 채 타이어에 붙은 불길을 쳐다보고 있다. 집계가 거의 마무리된 상황에서 우후루 케냐타 현 대통령이 54% 득표로 재선이 유력시되고 있다. 나이로비/EPA 연합뉴스
지난 8일 대선을 치른 케냐에서 또다시 2007년 유혈 충돌이 재현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현 대통령의 재선이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야당 후보가 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야권 지지자들과 경찰이 충돌하며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케냐 선거관리위원회의 잠정 집계결과를 보면, 개표가 97% 가까이 진행된 9일 현재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이 54.3%, 네 번째로 대권에 도전한 야권연합의 라일라 오딩가 후보가 44.8%를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적으로 선관위는 투표 마감 뒤 7일 이내에 최종 결과를 발표해야 하지만, 최종 결과 발표 일정은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비비시>(BBC) 방송 등은 9일 잠정 개표 결과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경찰이 발포해 최소 4명이 숨지는 등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찰 발표를 종합하면, 수도 나이로비의 빈민가 마다레 지역에서 시위대 2명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졌고, 대도시들 중 하나인 서부 키수무에서도 투표소를 공격한 2명이 경찰한테 사살당했다.
케냐에서는 10년 전 대선 개표 조작 논란으로 두달 동안 최소 1100명(최대 1300명)이 숨지고 6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2013년 대선 때도 300명이 숨졌다. 케냐 시민들과 국제사회는 대규모 유혈 충돌 사태가 재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야당 후보 오딩가의 정치적 고향으로, 야권 지지 성향이 특히 강한 키수무에서는 시위대가 타이어를 불태우며 “라일라가 아니면 평화가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경찰이 최루탄과 물대포, 고무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장면이 목격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오딩가 후보는 “해커가 지난달 살해당한 선관위 시스템 관리자 크리스 음산도의 아이디를 사용해 선관위 컴퓨터에 접속해 집계 결과를 조작했다”며 잠정 개표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해킹 의혹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에즈라 칠로바 케냐 선관위원장은 기자들한테 “우리는 그런 주장(개표 조작)이 입증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대선이) 우리의 선거 관리 시스템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며 “투표 기간은 물론 전후에도 선거 시스템에 내·외부 세력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연합(AU)과 유럽연합(EU) 소속 참관인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양쪽에 평화적인 갈등 해결을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어떤 불만족스러운 경우가 있더라도 합법적으로 보장된 분쟁 해결 채널을 사용해야 한다”며 “경찰도 공권력 남용을 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선거 참관인을 맡은 존 케리 전 미국 국무장관도 “전자투표 시스템에는 이상이 없다”며 충돌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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