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26일 아이오와주 마셜타운에서 진행된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 조 아파이오 전 애리조나주 마리코파 경찰국장이 연설하는 동안 트럼프가 그의 어깨를 감싸고있다. 마셜타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호 사면 대상자로 불법체류자 ‘불법 단속’으로 악명 높은 전 경찰 간부를 선택했다. 샬러츠빌 유혈 충돌 사태 이후 인종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다시금 통합이 아닌 ‘분열 대통령’의 면모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조 아파이오 전 애리조나주 마리코파 카운티 경찰국장에 대한 사면을 전격 단행했다. 아파이오는 히스패닉계에 대한 ‘인종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악명을 떨쳤다. 식당과 호텔은 물론 불법체류자가 있으리라 추정되는 모든 곳에 경찰을 보내 의심스러운 히스패닉은 모조리 구치소로 ‘쓸어담았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음주운전을 했다가 아파이오 관할 구치소에서 ‘생애 최악의 1년’을 보냈다는 히스패닉계 이민자 프란시스코 차이레스가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보면, 아파이오 관할 구역에서 체포된 불법체류자들은 재소자들이 죽어나갈 정도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구치소에서 학대 수준의 가혹한 처우를 견뎌야 했다. 아파이오의 학정에 시달리다 못한 시민들은 그의 ‘인종 프로파일링’에 대해 위헌 소송을 냈다. 아파이오는 범죄 혐의가 없는 불법체류 이민자를 구금하지 못하도록 한 연방지방법원의 명령에 불응한 채 단속을 계속 지시했고, 법원 모독 혐의로 최대 6개월의 징역형 선고를 앞두고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한테 자신의 열혈 지지자이기도 한 아파이오에 대한 기소중지 가능성을 타진했다. 이어 전통적으로 사면 전에 행해졌던 검토 절차도 없이 사면을 결정했다. 백악관은 “아파이오가 재임 기간 범죄와 불법 이민에 철퇴를 내리는 데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미 법무부는 일반사면의 경우 “반성을 표할 때만” 사면하도록 권고한다. 사면 신청 뒤 대기 시간도 5년으로 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성의 기미도 없고, 선고조차 이뤄지지 않은 아파이오를 사면하는 건 여러 모로 이례적인 조처다.
사면 논란으로 인해 악몽이 되살아났다는 차이레스는 “마리코파 사람들은 아파이오의 행위를 세상에 알리려고 엄청난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썼다”며 “힘들게 이뤄낸 모든 성과와 그들의 목소리를 트럼프가 한순간에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샬러츠빌 같은 사태 이후에는 대통령이 더욱 우리를 하나가 되게 해야 한다”며 “트럼프는 우리가 특히 인종적으로 분열되기를 바란다. 아파이오 사면이 그 증거”라고 덧붙였다.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이번 사면에 반대했다. 그의 대변인 도우 안드레스는 “법 집행 관리들은 미국에 있는 모든 이들의 권리를 존중할 책임이 있다. 이번 사면으로 그런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인식할까 우려스럽다”고 라이언 의장의 뜻을 전했다.
법률 전문가들 역시 트럼프가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을 연방법원 판사의 헌법 수호 노력을 방해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 법대 교수는 <블룸버그> 칼럼에서 “아파이오의 행동은 헌법과 정부 시스템 전체의 기반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이번 사면은) 대통령이 헌법을 개의치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