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정상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AP 연합
러시아가 한반도로 돌아오고 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보다도 더 북한의 입장을 변호하고 미국을 강력히 견제하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가 북핵 문제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압박과 제재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러시아와 중국이 제시한 로드맵만이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이날 한국 쪽이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 제재 강화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한반도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행보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입장은 우선 미국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 6차 핵실험 이후 미국이 주도해 추진하는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에 제동을 걸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바실리 네벤샤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미국이 결의안 표결을 11일까지 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데 대해 “다소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북한을 변호하며 미국을 견제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5일 중국 샤먼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선 북한 핵실험을 ’도발’이라고 비난하면서도, “어떤 종류의 제재도 지금은 쓸모없고 비효과적일 것이다”라고 했다. 특히 “우리를 북한과 같은 제재에 올려놓고는 북한에 대한 제재 부과에 우리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라며 “이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오스트리아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라고 미국을 정면 비판했다. 미국이 크림반도 문제로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하고 있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위반하는 러시아 기업들을 제재하려하는 것을 일축한 것이다. 그는 지난 1일에도 북핵 문제에 대해 “어떠한 전제조건도 없이 모든 쪽이 관여하는 직접 대화가 이 지역의 문제들을 푸는데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한반도 문제에 적극 관여할 의지나 능력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북핵 6자회담 참가국이기는 했으나 논의의 중심에는 끼지 못하는주변적인 역할에 불과했다. 그러던 러시아가 최근 갑자기 북한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며, 북핵 문제에 대한 개입 폭을 넓히는 데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지렛대로 삼으려는 푸틴의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크림반도 점령과 미국 대선 개입 문제로 갈등이 깊어지고 있는 미국을 압박하는 수단이다.
러시아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 처지였던 북한과의 경제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5일 기자회견에서 “1분기 (러시아의 대북) 석유·석유제품 공급은 4만톤이었다” “북한 노동자의 러시아 송출도 다 해야 3만명이다”라고 밝혔다. 제재의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발언이었으나, 최근 확대된 북-러 경제관계의 단면을 보여줬다.
냉전 시기 북한은 중소분쟁 상황에서 두 나라를 오가는 등거리 외교로 위상을 키웠다. 푸틴의 최근 태도는 북한에 다시 새로운 출구를 열어주고 있다. 북한이 중국에 무역의 90%, 원유 공급의 80% 가까이를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이 원유 공급을 일부 줄이는 조처를 취한다 해도 러시아가 생명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역시 북한을 지렛대로 미국과 중국을 견인하거나 견제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