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보기술(IT) 업계를 선도하는 애플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도 ‘스마트’하게 움직였던 정황이 포착됐다.
6일 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입수한 조세 회피 기록인 이른바 ‘파라다이스 페이퍼스’를 통해, 애플이 2013년 아일랜드가 국제적 압박에 못 이겨 세법을 개정할 움직임을 보이자 자회사를 영국령 저지섬으로 옮긴 사실이 드러났다. 협회는 전날 버뮤다의 로펌 애플비 등에서 1950~2016년 작성된 문건 1340만건을 입수해 세금을 회피하려던 고객 명단을 폭로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부터 미국의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 유력 인사들, 나이키와 애플 등 거대 기업들 이름이 대거 폭로돼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다국적기업이 본국의 높은 법인세를 피하려고 해외 순익을 낮은 세율 국가에 신고하는 것은 특별한 일은 아니다. 애플도 이 허점을 노려 미국 이외의 모든 매출(전체의 약 55%)을 아일랜드 자회사로 편입해 세액을 크게 낮췄다. 아일랜드의 일반적 세율은 12.5%이나 애플 자회사들은 비거주자로 분류돼 수년간 2%대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계산을 보면, 애플 자회사 한 곳은 연간 법인세율이 0.005%에 불과했다. 2013년 미국 상원은 애플의 세금 회피 행태를 비판했고, 아일랜드는 세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금이 오를 기미가 보이자 애플은 조세회피처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미국 로펌 베이커&매킨지를 통해 케이맨제도, 버진아일랜드, 저지섬 등의 세법을 분석하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지역에서 세법이 바뀌지 않을 것인지 꼼꼼히 물어봤다. ‘비밀스런 행각’이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고 입단속까지 시켰다. 이 과정에서 애플비가 관여했다.
애플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2014년 말 아일랜드에 등록된 자회사들 중 두 곳을 저지섬으로 이전 등록했다. 저지섬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 채널제도에 있는 영국 왕실령으로, 외국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애플이 옮긴 자회사는 해외 유보금 2520억달러(약 280조2000억원)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는 애플 오퍼레이션스 인터내셔널(AOI)과 지식재산권 일부를 소유한 애플 세일즈 인터내셔널(ASI)이다.
제조 자회사 애플 오퍼레이션스 유럽(AOE)은 아일랜드에 남겼는데, 이는 아일랜드 정부와의 협정을 깨지 않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또 개정 아일랜드 세법이 이 법인이 지식재산권을 양도받는 것을 유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비비시>(BBC) 방송은 올해 미국을 제외한 애플의 이익은 447억달러이며, 외국 정부에 세금으로 16억5천만달러를 지불했다고 밝혔다. 이는 3.7%의 세율을 적용받은 것으로, 법인세율 세계 평균의 6분의 1에도 못 미친다고 덧붙였다. 애플은 자회사 이전에 대해 “미국과 아일랜드, 유럽연합에 모두 통보했고, 우리가 만든 변화로 세금이 줄지도 않았다”면서 “2014년부터 3년간 법인소득세율 7% 규모인 15억달러를 아일랜드 정부에 납부했다”고 해명했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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