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시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 소라식물원 누리집 갈무리
세계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일본 고베에서는 고베항 개항 150돌을 기념해 만든 거대 크리스마스 트리에 대해 “나무가 가엽다”는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일본 소라식물원은 지난 10월에 고베시의 지원을 받아서 도야마현에 있던 ‘아스나로’(편백과에 속하는 일본 특산 상록수)를 신칸센에 실어 1000㎞ 넘는 거리를 운반해 크리스마스 트리로 만들었다. 주최 쪽은 이 나무가 길이 30m에 달해 미국 록펠러센터의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큰 “세계 최고 높이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는 “나무가 가엽지 않느냐”며 싸늘한 시선이 적지 않다. 주최 쪽은 추정 수령 150년에 달하는 나무를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까지만 트리로 쓰고 이후에는 일부를 신사 입구에 있는 문인 ‘도리이’로 만드는 등 목재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원래는 나무를 잘라서 기념품까지 만든다는 계획이었는데 비판 여론에 취소했다. 인터넷에서는 “전시를 취소하라”는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사람들의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은 것은 주최쪽의 과장된 홍보 활동 탓도 있다고 <도쿄신문>이 24일 전했다. 주최 쪽은 누리집에 이 나무가 세계 최고 높이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자세히보면 설명 밑에 주를 달아서 “뿌리 길이까지 포함한 것으로, 사람이 옮겨온 것 중에서”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살아있는 나무 자체를 트리로 쓰는 경우에는 고베 크리스마스 트리보다 더 큰 트리가 있다. 또한 주최 쪽 관계자들이 인터넷에 “산불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나무” “사람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생한 나무”라고 선전했으나, 실제로는 도야마 농촌 주민이 오래 전에 심은 나무이며 산불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나무도 아니었다.
‘변기 솔’이란 비웃음을 산 로마 중심가의 트리. 로마/AFP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선 로마 시가 시내 한복판 베네치아 광장에 설치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잎이 거의 다 떨어진 채 앙상한 가지만 남아 ‘변기 솔’이라는 별명이 붙는 등 조롱을 받고 있다. 로마 시민들은 “쓰레기 수거, 대중 교통 등 도시 인프라에서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있는 로마의 현재 상황을 대변하는 상징물”이라며 비판에 나섰고, 비르지니아 라지 로마 시장은 “판매자 쪽에 환불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의 성탄 트리는 시민들의 지탄의 대상이 됐다. 베오그라드 번화가에 설치된 18m 높이의 플라스틱 인공 나무로 만들어진 이 트리는 평범한 외관과는 달리 세계에서 가장 비싼 크리스마스 트리 중 하나라는 사실이 최근 알려졌기 때문이다.
세르비아의 반부패 웹사이트가 이 트리의 가격이 뉴욕 록펠러센터 외부에 세워진 성탄 트리의 약 4배에 해당하는 8만3천유로(약 1억600만원)에 달한다고 폭로하자, 시민들은 “이 트리는 세르비아 시의 예산 낭비와 부패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며 분노했다. 야당들은 22일 ‘부끄러운 줄 알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트리 근처에서 시 당국을 성토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중심가에 설치된 플라스틱 나무 트리. 가격이 1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베오그라드/AFP 연합뉴스
전세계 최대의 크리스마스 트리 제조국가인 중국에서는 최근 상당수 지역 정부가 크리스마스 행사를 금지하는 등 ‘크리스마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24일 보도했다.
중국 공산당 산하 청년조직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후난성 난화대학교 공청단 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 관련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는 내용의 행동수칙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공청단은 이 성명에서 “공산당원들은 공산주의 신념을 따르는 모범이 돼야 한다”며 “미신과 아편과 같은 서방 정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고 했다.
중국 장쑤성의 한 대학 역시 성탄절 행사를 금지하고 나서 반발을 사는 등 논란이 빚어졌다. 후난성 제2의 도시 헝양에서도 당원들의 종교행사 개최를 금지하는 한편 일반인들이 크리스마스 이브와 성탄절 당일에 거리에 모이는 것 자체를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중국 문화의 재융성을 강조한 것과 관련해 서구문화로 비쳐지는 크리스마스 행사에 규제를 가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도쿄 베이징/조기원 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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