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드 걸 여러 명이 지난해 9월3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몬차에서 열린 포뮬러1 그랑프리 대회에서 선수들이 입장하는 통로에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줄지어 서 있다. 몬차/AFP 연합뉴스
세계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1(F1)이 이번 시즌부터 선수들을 호위하는 여성 ‘그리드 걸’을 없애기로 했다. 그리드 걸은 대회를 후원한 브랜드가 새겨진 노출이 심한 유니폼을 입고 경기 시작을 알리거나, 선수 옆에서 이름판을 들고 포즈를 취하는 일을 해와 성 상품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숀 브라치스 포뮬러1 상업 운영 담당 이사는 31일 “그리드 걸을 세워 온 관행은 수십년 동안 이어져 왔지만 이 관습이 브랜드 가치를 반영하지 않고 현대 사회 규범과 상충된다고 느꼈다”며 이번 시즌부터 그리드 걸을 세우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 위대한 스포츠에서 우리의 비전과 더 잘 어울리는 변화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실버스톤 서킷사의 스튜어트 프링글 경영 이사도 “포뮬러1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며 “스포츠가 열리는 공간에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구식 관행”이라고 환영했다.
<비비시>(BBC) 방송은 그리드 걸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바뀌면서 이들이 경기에 등장하는 것이 논쟁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로스 브라운 포뮬러1 운영국장은 그리드 걸의 고용을 재검토하고 있다고 입장을 냈다. 당시 일부 선수들과 관계자들은 그리드 걸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인터뷰하기도 했다. <비비시> 스포츠는 그리드 걸이 포뮬러 1의 일부로 유지돼야 하는지에 대한 온라인 설문 조사 결과, 60%가 그렇다고 답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남성 모델과 함께, 혹은 마스코트처럼 어린이들을 경기장에 세우자는 의견도 나왔다.
스포츠계의 성평등을 위해 조직된 모금단체 ‘우먼스포츠트러스트’는 성명을 내고 “사이클링과 복싱, 종합 격투기 유에프시(UFC) 등에서도 포뮬러1을 따라야 한다”며 “시상식에 등장하는 여성, 격투기 경기에 나오는 라운드걸과 옥타곤걸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건 페미니스트와 모델 간의 대결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런 변화는 세계 기업들이 2018년 스포츠에 어떻게 여성의 가치를 담고 묘사할 것인지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7일 영국의 프로다트협회도 ‘워크 온 걸’이라 불리는 여성 경기 안내원을 더이상 경기장에 세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워크 온 걸로 일하던 샬럿 우드는 “내가 결정한 직업에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공개적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일부 그리드 걸 또한 포뮬러1의 이번 결정에 “관중과의 소통, 후원 기업의 광고를 맡아 온 우리 역할을 없애고 싶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앤드류 벤슨 <비비시> 스포츠 담당 기자는 “일부에선 무례한 전통의 단절이라고, 다른 쪽에선 스포츠 ‘매력’의 감소라고 평가하지만 지금 사회는 결정적 시기를 겪고 있다”며 “지금은 ‘#미투’ 시대이며,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한 성폭력의 폭로가 불거졌다. 이런 맥락에서 포뮬러1은 적절한 시기에 해야만 했던 판단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포뮬러1은 오는 3월25일 시즌 첫 경기로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그랑프리’를 연다.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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