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A 비밀수용소 관련 의혹들
EU “각료회의서 투표권 정지” 강력 경고
이달 초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의 폭로로 가시화된 미 중앙정보국(CIA)의 유럽 내 비밀수용소 운영 등 인권유린 문제가 미국과 유럽국가들 간의 새로운 갈등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비밀수용소 정보공개와 테러용의자를 태운 수송기의 기착 및 영공 통과 의혹에 대한 미국 쪽의 해명을 요구하고 10여개국에서 자체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 프랑코 프라티니 유럽연합 법무 담당 집행위원은 28일 비밀수용소 운영 사실이 확인된 회원국은 유럽연합 각료회의에서 투표권이 정지되는 전례없는 조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의회 국제관계위원장인 엘마르 브로크는 루마니아의 비밀수용소 운영 사실이 밝혀지면 이미 조인한 가입조약도 재협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28일 미국을 방문한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도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내 인권감시기구인 ‘유럽이사회’도 검사 출신의 딕 마르티 스위스 상원의원을 조사관으로 임명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그는 테러 용의자 수송으로 의심되는 31건의 운항 자료와, 비밀수용소 의심지역에 대한 위성사진 등을 유럽연합 당국에 요청한 상태이다. 미 중앙정보국은 9·11 동시테러 이후 테러 용의자들을 납치한 뒤 동유럽의 군사기지, 모로코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와 중앙아시아국가 등 요원들의 상시적인 접근이 가능한 나라의 비밀수용소에 수감해 놓고 “독특하고 혁신적”인 심문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이 조사에 나서면서 미 중앙정보국이 운영하는 위장항공사인 테퍼항공의 허큘리스 수송기의 기착사실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독일 국적의 할레스 엘 마스리는 2003년 독일에서 납치돼 마케도니아,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송된 사실 등이 확인됐다. 유럽연합 등의 해명 요구에 대해 미 정부는 “사태를 평가할 시간을 달라”며 확실한 답변을 회피했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28일 “가능한 한 완벽하고 솔직한 태도로 대답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다음달 5일 나토 외무장관회의차 유럽을 방문할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보도내용에 대해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비밀수용소의 존재를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으면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넓은 맥락에서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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