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최우방국인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31일 미국의 캐나다산 철강 등에 대한 고율관세 조처를 비난하며, 상응하는 보복조처를 밝히고 있다. <비비시> 화면 갈무리
미국이 포문을 연 무역전쟁의 암운이 전 세계에 드리우고 있다. 미국이 중국뿐 아니라 유럽의 주요 동맹국에게도 고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서자, 상대국들도 보복조처를 구체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31일 미국의 유럽연합·캐나다·멕시코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고율관세 부과에 상응하는 보복조처를 취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 앞선 30일, 미국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1일 0시부터 유럽연합 등의 철강 제품에 25%, 알루미늄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선언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미국의 안보 필요에 따라 특정 제품에 고율관세 등의 조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 조처를 취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유럽연합도 보복 조처 마련에 나섰다. 유럽연합은 철강, 모터사이클, 농산물 등 64억유로 규모의 미국 제품에 대해 고율의 보복관세 부과를 계획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이 중 28억유로 규모의 관세는 20일부터 부과된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유럽연합은 또 미국의 이번 조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예정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 조처는 종국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해치는 소용돌이의 격화를 촉발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독일 정부는 미국의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거부한다. 이런 일방적인 조처가 불법적이라고 생각한다. 국가안보를 인용한 근거는 타당하지 않다. 유렵연합은 현명하고, 단호하고, 공동으로 합의된” 대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미국의 조처가 “불법적”이라고 비난한 뒤 유럽연합은 “단호하고 비례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엘리제궁이 밝혔다.
이번 조처의 대상에 포함된 캐나다·멕시코 등 북미무역협정(나프타) 국가들도 대응 조처를 경고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가 미국에 국가 안보위협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며 미국의 주장은 모욕적이라고 반발했다. 캐나다 역시 130억달러 상당의 미국 제품에 대해 오는 7월1일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멕시코도 이날 성명에서 “미국이 부과한 관세와 동일한 영향을 미치는 수준의 관세를 철강, 램프, 사과 등 여러 물품에 부과하겠다”며 “이번 조치는 미국이 관세부과를 철회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멕시코는 철강 및 파이프, 램프, 각종 베리류 농산물, 포도, 사과, 냉동고기, 돼지고기, 치즈 제품들에 미국의 관세 부과가 미치는 “피해 수준에 상응하는 양”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미국은 지난 3월 말 미국이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고율관세 부과 계획을 밝혔지만, 그 뒤 협상을 통해서 한국 등 일부 관계국에게 면제 조처를 하거나, 유럽연합·캐나다·멕시코에 대해선 유예 조처를 한 뒤 협상을 지속해왔다. 유럽연합, 캐나다, 멕시코에 대해서는 유예 기간을 애초 5월1일에서 6월1일로 연장하면서 협상을 이어왔으나 진통 끝에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기존 방침대로 고율관세를 부과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은 중국뿐 아니라 유럽 등 주요 동맹국들에게 잇따라 보호무역 조처를 취하며 전 세계를 무역 전쟁의 늪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백악관은 지난달 29일 25%의 관세가 부과되는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 수입품 목록을 오는 6월15일에 발표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중국 회사들의 미국 첨단 기술회사 합병을 막는 투자제한 조처 등도 6월30일에 발표한다고 밝혔다. 미국은 중국과 두 차례의 무역협상을 통해 3750억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미국은 2일부터 시작되는 3차 협상을 앞두고 이 같은 일방적인 조처를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은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매번 태도를 바꾸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자기 나라 신용과 명예를 또다시 소모하고 낭비하는 것”이라며 “중국은 무역 전쟁을 하고 싶지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적군이 쳐들어오면 장군을 보내 막고, 홍수가 밀려오면 흙으로 둑을 쌓겠다”고 맞받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밖에 지난달 23일에도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미국이 수입하는 자동차에 대해 고관세를 부과할 수 있을지 조사를 시작할 것을 ‘고려’하라고 행정부에 지시했다. 미국 정부는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에 25%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 조처가 시행되면 현재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한국 자동차 업계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우려 및 반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화당의 최고위 인사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성명을 내 “이 결정에 반대한다. 우리는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 같은 나라들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해결하려고 일해야만 할 때 오늘 조처는 미국 동맹국을 대상으로 했다”고 비난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