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방송인 출신 인권운동가인 아룹 수브흐가 14일(현 지시각) 요르단 암만 자택에서 자녀들과 찍은 사진 옆 에서 웃고 있다. 수브흐의 남편은 이라크인이다. 암만/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한국에 <뽀뽀뽀>의 ‘뽀미 언니’가 있다면 요르단에는 아룹 수브흐(49)가 있다. 수브흐는 1993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요르단 방송의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금은 외국인 아버지와 요르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을 위해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유명인이지만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발로 뛴다. ‘엄마의 국적이 나의 권리다’ 집회에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직접 연구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유명세 덕을 보기도 한다. 방송 당시 어린이 팬이었던 청년들이 집회에 몰려든다.
지난 14일 암만에서 수브흐를 만났다. 국적 문제는 이 나라 유명 여성 방송인도 비켜 갈 수 없었다.
“2004년 첫째 아들이 태어났지만 요르단 국적을 가질 수 없었어요. 제 남편이 이라크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요르단인 자녀들의 국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수브흐는 방송 활동을 중단하고 인권운동가로 변신했다. 먼저 인터넷 신문에 기고부터 시작했다. 아랍 국가의 시민들 모두가 시청하는 아랍 방송 등에 출연해 자신의 주장을 펼쳐나갔다. 요르단 왕비가 사회적인 지위를 가진 여성 리더들을 초청하는 자리에도 늘 초대받지 못한다. 그가 언론에 기고한 글들은 얼마 안 돼 삭제되기 일쑤다.
수브흐는 일부 요르단인들의 선입견에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국적 문제를 겪는 이들이 요르단 국적을 가지면 일자리가 부족해질 거라고 하는데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며 “2011년 킹후세인연구센터에서 나온 연구 보고서를 보면 오히려 요르단 발전을 위해 일할 능력 있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이 문제를 정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시민의 인권 문제임을 직시하고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모두 요르단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들의 권리를 찾아주면 해결되는 문제다”라고 주장했다.
수브흐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모이면 정부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권리를 얻고 싶으면 권리를 달라고 하라’는 요르단 속담을 소개하며 “국적은 우리 자녀들의 권리다”라고 강조했다.
암만/유덕관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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