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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포화 속 마지막 희망 ‘하얀 헬멧’마저 시리아를 떠났다

등록 2018-07-24 15:55수정 2018-07-24 22:19

5년간 11만여명의 목숨을 구한 시리아의 보통 사람들
살인적 폭격을 피해 22일 요르단으로 탈출해
하얀 헬멧 누리집 갈무리
하얀 헬멧 누리집 갈무리
”전쟁은 삶을 무너뜨렸고 인간성을 흐렸습니다. 하얀 헬멧은 총이 아니라 ‘들 것’을 선택하며 구조 활동을 통해 시리아인에게 희망을 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12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열린 만해 대상 시상식에서 평화상을 받은 시리아의 자발적 민간 구조대 ‘하얀 헬멧’의 대표 라에드 살레가 한 발언입니다. 8년째 계속된 시리아 내전에서 ‘하얀 헬멧’이 11만여 명의 목숨을 살린 공로로 상을 받은 것이죠. ‘하얀 헬멧’은 2016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지난해 2월 이들의 활약을 담은 영상물이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얀 헬멧 대원들마저 시리아 남서부 지역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시리아 정부군의 전방위 압박으로 시리아 남서부로 내몰린 하얀 헬멧이 구조를 요청하자, 이스라엘과 영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을 구출했습니다. 요르단 외교부는 22일(현지 시각) 하얀 헬멧 소속 대원과 가족 422명의 입국을 허용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들 일행이 다른 국가로 떠나기까지 최장 3개월간 체류를 허락한 것이죠. 하얀 헬멧 대원들은 곧 캐나다, 독일 등으로 피난을 떠날 예정입니다. (▶관련 기사 : 시리아 내전 민간구조대 ‘하얀 헬멧’ 긴급 소개)

시리아 민간 구조대인 하얀 헬멧 대원들이 시리아 내전의 격전지 알레포에서 부상자 구호 작업을 하고 있다. 하얀 헬멧 누리집 갈무리
시리아 민간 구조대인 하얀 헬멧 대원들이 시리아 내전의 격전지 알레포에서 부상자 구호 작업을 하고 있다. 하얀 헬멧 누리집 갈무리
하얀 헬멧을 쓴 이들은 목수, 제빵사, 재단사 등 다양한 직군의 이름 없는 시리아 국민들입니다. 2013년 초 영국 보병 출신의 제임스 르 메슈리어가 창설한 자발적 구조대입니다. 약 3000명의 대원이 시리아 8곳 주요 도시에서 활동하며 독일, 영국,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시민사회 단체로부터 의료 장비를 후원 받았습니다.

하얀 헬멧의 창설자 메슈리어는 2015년 8월21일 아랍 방송 매체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 인류를 구하는 일”이라는 코란의 구절이 단체의 모토(신조)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당시 “시리아 북부 알레포 지역에서 2013년 구조대 20명으로 시작된 팀이 (2년 만에) 20개 팀으로 확장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구조 지원자에게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합니다. “당신은 왜 여기에 지원했는가?” 구조대원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이 일을 하는 저마다의 이유를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한 중년 남성은 하얀 헬멧 구조대로 활동한 아들이 숨진 뒤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구조대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하얀 헬멧은 내전의 증인으로 조사, 기록 임무를 맡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찍은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특히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갓난아기를 구한 뒤 오열하던 하얀 헬멧 대원 아브 키파의 모습이 전세계를 울렸습니다.

아기를 구조한 뒤 울음을 터뜨리는 하얀 헬멧 구조대원 아브 키파.
아기를 구조한 뒤 울음을 터뜨리는 하얀 헬멧 구조대원 아브 키파.
그러나 키파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난해 8월12일 만해 축전 평화상을 받은 하얀 헬멧의 대표 라에드 살레는 시상식으로 가던 차 안에서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눈물을 쏟아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시리아 반군 지역 이들리브주 구조 센터에서 키파를 비롯한 동료 7명이 피살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겁니다. 구조 활동을 하다가 대원이 목숨을 잃은 건 전쟁터이기에 피할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구조 센터가 공격을 받은 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거기다 대원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숨졌습니다. 이른바 의도적으로 처형을 당한 것이죠.

라에드 살레는 어렵게 마음을 추스르고 만해 평화상 수상 소감을 말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시상식이 끝나자마자 시리아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그가 비행기에 오르기 전 트위터에 올린 것은 한국의 기와 사진이었습니다. 백담사를 방문했을 때 아랍어로 기와에 문구를 적은 것이죠. “시리아에 평화를.”

평화를 기원하며 반군과 정부군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구한 하얀 헬멧 대원들. 그들이 시리아 남서부 지역을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살인적인 폭격이 더 심해지고 남은 시리아인을 도울 구조 인력이 줄어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비록 일부 지역에서 하얀 헬멧 대원들이 시리아를 떠났지만 죽음의 위기 속에서 5년간 11만 명이 넘는 인류를 구한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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