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가 17일(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대북 제재를 놓고 거칠게 부딪쳤다. 9월 안보리 순회 의장국 미국이 요구해 긴급히 열린 회의로, 3차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제재의 끈을 단단히 조이려는 미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니키 헤일리 주유엔 미국대사는 ‘비확산 및 북한’을 주제로 한 회의에서 러시아가 유엔 제재 결의를 위반해 북한을 돕고 있다며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러시아의 위반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박 간 환적으로 러시아가 북한에 연료를 제공한 사례를 올해에만 148건 추적했으며, 촬영도 해놨다고 밝혔다. 이어 “제재에 찬성한 러시아가 이제 완화를 요구한다. 왜냐면 러시아가 (우리를) 속여왔고, 이제 들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러시아는 위반 증거 은폐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거 은폐 시도란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보고서 초안에 담겼던 러시아 쪽 위반 내용이 러시아의 요구로 빠진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실리 네벤쟈 주유엔 러시아대사는 미국이 “정치적으로 나쁜 의도”를 갖고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그는 대북제재위 보고서와 관련해 “(전문가들의 작업이) 갈수록 정치화됐고, 결국 워싱턴의 시각에 인질이 됐다”며 “그래서 우리 입장을 반영하라고 요구했고, 미국 대표단과 전문가들을 포함해 15개 안보리 이사국이 동의해 수정했다”고 반박했다. 이에 미국은 따로 성명을 내어 “미국 전문가 누구도 러시아의 오염된 수정본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미-러는 대북 제재 완화를 놓고도 충돌했다. 헤일리 대사는 “어렵고 민감한 북한과의 대화가 진행 중”이라며 “완전한 비핵화에 닿을 때까지 강력하고 전세계적인 제재를 완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네벤쟈 대사는 이에 맞서 “한반도 핵 문제를 제재와 압박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남북 협력을 위해 제재를 임시 면제하는 방안을 고려하자고 했다. 또 “요구만 하고 아무것도 안 주면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며, 미국이 종전선언에 적극 나서라고 요구했다. 마차오쉬 주유엔 중국대사도 비핵화의 진전을 봐가며 “적절한 때에” 제재를 완화하자고 말했다.
한편 외교부는 17일 강경화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오전과 저녁 두 차례 통화로 북한 비핵화 문제를 협의했다고 18일 밝혔다. 외교부는 저녁 통화에 대해 “폼페이오 장관은 남북정상회담 준비 현황에 대한 강 장관의 오전 설명을 내부적으로 공유했다고 언급하고,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대한다고 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외교부를 방문해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비핵화 협의에 관해 논의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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