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미국 정부가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축하하며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즉시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다음주 말께 뉴욕 유엔 총회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만나고,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북한 대표’의 오스트리아 ‘빈 채널’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평양공동선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타며 ‘10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연내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19일 오후(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미국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성공적 정상회담 결과를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참관 아래 영변의 모든 시설을 영구히 해체하는 것을 포함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재확인”하고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을 미국과 국제적 사찰단의 참관 속에서 영구 폐기하는 작업을 완료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을 환영한다고 했다. 앞서 “엄청난 진전”이라고 밝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평가다.
폼페이오 장관은 “미국은 북-미 관계를 전환하기 위한 협상에 즉시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폼페이오-리용호의 장관급 채널과, 비건 특별대표가 북쪽 상대를 “가장 빠른 기회에” 만나는 ‘빈 채널’ 등 ‘투 트랙’ 채널을 가동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는 일련의 대화가 “2021년 1월까지 완성될 북한의 신속한 비핵화 과정을 통해 북-미 관계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한편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협상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21년 1월’은 트럼프 대통령의 4년 첫 임기가 끝나는 시점이다. 이는 김 위원장이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에게 밝힌 시간표를 미국이 수용했음을 뜻한다.
미국의 대응은 평양공동선언 발표 뒤 15시간 만에 나온 매우 빠른 움직임이다.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히고, ‘상응 조처’를 내건 조건부이지만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 의사까지 밝힌 점을 평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플러스알파’가 미국에 전달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폼페이오 장관의 성명에 나온 “영변의 모든 (핵)시설 해체에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 참관”이라는 말은 평양공동선언에는 없는 내용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평양공동선언엔 담기지 않은 북한의 ‘핵사찰 허용’을 트위터로 언급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평양공동선언을 설명하는 브리핑에서 “(남북 정상 간에) 공동선언 내용 외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를 토대로 다음주 초 한-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협상이 속도를 낼 수 있는 방안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가 가능해졌다”며 미공개 합의가 있음을 암시했다.
미국을 신속히 움직이게 한 다른 주요 배경으로 11월6일 중간선거도 꼽힌다. 선거를 앞두고 큰 외교적 성과를 얻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의 욕구가 속도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핵 협상은 뉴욕 유엔 총회를 계기로 25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 이어지는 북-미 외교장관 회담, 조만간 예상되는 빈 실무협상에서 재도약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빈 실무협상에도 응하면 북-미 협상 채널이 정상-장관-실무 라인까지 이어지며 강화되는 효과가 있다.
협상에선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 등 미국의 상응 조처, 북한이 언급한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위한 로드맵 등과 관련된 구체적 논의가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 성과에 따라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종전선언 연내 서명 등의 윤곽도 잡히게 된다.
북-미 관계에 밝은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과거 협상에서는 영변 핵시설의 동결·불능화 정도였지 영구 폐기까지 가보지 못했다. ‘과거를 답습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한 트럼프 행정부에 ‘영구 폐기’는 매력적인 유인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뒤가 막혔던 상황에서 돌이 던져졌으니 이제 폐기의 시기, 범위, 방식, 검증 방법을 놓고 북-미가 협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김지은 기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