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만에 최악 ‘카테고리-5 태풍’ 위투
콘크리트 집들도 ‘휘청’… “전쟁터 같았다”
자동차·경비행기 종잇장처럼 뭉개져
이재민 수백명, 사망자도 발생
태풍 ‘위투'가 강타한 사이판의 한 리조트 로비가 강풍으로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집이 뜯겨 나갈 것 같아 화장실에 숨어 있었다.”
미국령 북마리아나제도 티니안섬에 사는 와니타 멘디올라는 태풍 ‘위투’가 강타했을 때의 급박한 상황을 <에이피>(AP) 통신에 설명했다. 시간당 풍속이 최대 290㎞에 이른 위투가 티니안과 사이판섬을 휩쓸면서 그가 숨을 곳은 화장실밖에 없었다. 멘디올라는 “콘크리트 집들이 흔들렸다. 섬에 있는 집 대부분이 파괴돼 잔해만 남았다”고 했다. 사이판 주민인 놀라 힉스도 메신저 ‘왓츠앱’을 통해 “태풍을 많이 봤지만 이번 같은 바람이나 폭우를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다. 살아 있다는 게 신께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티니안섬은 1945년 8월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B-29가 이륙한 곳으로 역사에 기록된 곳이다.
외신들은 25일 태풍이 할퀴고 간 사이판·티니안섬은 전쟁터와 다를 바 없다고 전했다. 83년 만의 최악의 태풍이라서, 태풍이 잦은 이 지역 사람들 중에도 이 정도 위력을 경험해본 사람은 거의 없다. 기상 사이트 ‘웨더 언더그라운드’는 위투가 미국 본토나 미국령을 강타한 폭풍 가운데 1935년 5등급(카테고리-5) ‘노동절 허리케인’ 이후 가장 강력했다고 전했다. 강풍에 나무와 전신주가 뿌리째 뽑힐 정도였다. 시속 289㎞ 이상이면 허리케인 등급 중 가장 강한 5등급으로 분류된다. 태풍은 30도에 이르는 북태평양의 따뜻한 수온의 영향으로 하루 사이 1등급에서 5등급으로 세력을 키웠다.
북마리아나제도를 강타한 태풍 ‘위투’의 영향으로 경비행기 한 대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손됐다. <포스트괌> 누리집 갈무리
사이판의 44살 여성은 태풍을 피해 버려진 건물로 대피했다가 건물이 무너져 목숨을 잃었다. 정확한 사상자 수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사이판의 한 병원에 130명이 응급실을 찾았다고 <에이피>가 전했다. 경비행기가 완전히 뭉개져 공항 철조망에 얽히고, 곳곳에서 뒤집힌 차량 모습을 담은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공공기관과 학교는 모두 문을 닫고, 공항과 항만도 폐쇄됐다. 당장의 경제적 피해도 문제지만, 사이판의 주요 산업인 관광업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북마리아나제도가 지역구인 그레고리오 사블란 미국 하원의원은 “전쟁 때 같은 피해가 발생했다. 건물뿐만 아니라 전기 및 통신 시설도 심각하게 파손됐다. 전기를 공급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피해 복구에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4일 사이판으로 이동 중인 슈퍼 태풍 ‘위투'의 위성사진. AP 미해양대기국
위투는 북마리아나제도를 휩쓴 뒤 필리핀 루손섬으로 북상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올해 북반구의 이상기온으로 해수 온도가 상승한 게 위투에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했다고 분석했다. 일반적으로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26도 이상인 바다에서 발생하고, 온도가 높아질수록 세력이 강해진다. 미국 해양대기청의 존 마라 태평양 기후 담당 국장은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해수 온도와 해수면 상승은 태평양 섬 국가를 지나는 태풍의 빈도를 늘리고 강도도 더 세게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구 온난화 탓에 폭풍의 위력이 점점 세지는 현상은 멕시코만에서 발생하는 허리케인도 마찬가지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