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 앞에서 1일(현지시각) 구글 직원들이 임원들의 직장내 성추행과 이를 덮은 회사 쪽 대응에 분노하며 동맹파업을 벌이고 있다. 마운틴뷰/로이터 연합뉴스
“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세계 최대 정보통신업체인 구글의 모토다.
일부 임원들의 직장내 성추행과 회사 쪽의 미적지근한 대응에 분노한 구글 직원 수천명이 1일 세계 곳곳에서 시한부 동맹파업을 벌였다. 이날 파업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본사를 비롯해 뉴욕, 런던, 샌프란시스코, 싱가포르, 베를린, 취리히, 도쿄 등 40여개 지사에서 진행됐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마운틴뷰 본사에는 1000여명의 참가자들이 자사 모토인 “악해지지 말라”는 문구를 비롯해, “성폭력 문화를 끝내자”, “모두를 위한 평등”, “헤이 구글, WTF(욕설)” 등을 쓴 손팻말을 들었다. 세계 전역의 구글 파업 참가자들은 각 지사의 시간으로 오전 11시10분에 맞춰 회사 로비나 정문 앞에서 실리콘밸리의 과도한 남성 중심 문화를 성토하며 직장내 성평등과 인권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구글코리아 직원들도 한국시각으로 1일 오전 11시10분 일손을 멈추고 자발적으로 모여 직장내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선 파업 참가자들이 메가폰을 들고 회사 정문 앞의 남녀 시민들에게 성평등을 역설했다. 미국의 경우 뉴욕 지사는 파업 참가자의 남녀 비율이 비슷했지만,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 지사에선 남성 참가자들이 여성 참가자들보다 6배가량 많았다고 <에이피> 통신이 보도했다. 300여명이 참가한 케임브리지 시위를 주도한 비키 홀랜드는 “성추행 시대는 끝났다. 조직적 인종주의 시대는 끝났다. 권력 남용의 시대는 끝났다”고 외쳤다. 샌프란시스코 시위에서도 “여성의 권리는 (모든) 노동자의 권리다”라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구글코리아 본사에 구글의 로고가 선명하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구글 직원들의 파업은 구글이 ‘안드로이드의 창시자’로 불리는 앤디 루빈의 성추행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를 은폐했을 뿐 아니라 거액의 퇴직 보상금까지 챙겨줬다는 <뉴욕 타임스>의 최근 폭로로 촉발됐다. 이 신문은 구글이 루빈의 성추행 추문에 신뢰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도 2014년 그에게 9000만달러(약 1000억원)의 퇴직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루빈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또 구글 엑스(X)의 리처드 드볼 이사는 취업 면접을 보러 온 여성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난 뒤에도 수년간 임원 자리를 지키다가 지난달 25일 <뉴욕 타임스> 보도가 나온 지 닷새 만에 결국 사임했다. 이 신문은 드볼이 2013년 여성 지원자를 면접하고 나서 일주일 후에 그를 자신의 야영 캠프로 초대해 성추행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더해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도 혼외 성관계 스캔들로 궁지에 몰려 있다.
전 세계 구글 직원들 중 여성의 비율이 31%를 차지하지만 고위 관리직 비율은 그보다 훨씬 낮으며, 이런 사정은 실리콘밸리의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지난주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몇년 새 고위직 13명을 포함해 모두 48명을 성추행에 대한 징계로 해고했으며, 그들 누구에게도 퇴직 보상금을 준 적은 없다”고 주장했으나, <뉴욕 타임스>의 폭로 보도로 직원들의 분노가 거세지자 뒤늦게 “구글의 과거 조처”를 사과하고 수습에 나섰다.
피차이 최고경영자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나는 여러분 다수가 느끼는 분노와 실망을 이해하며 나도 같은 감정이다”라며 “나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지속돼온 (성추행과 성 불평등) 문제를 개선할 전적인 책임이 있다. 바로 이곳 구글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밝혔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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