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 정보기술 업체인 애플이 ‘차이나 쇼크’를 만났다. 애플은 중국 판매 부진 추세 속에 미-중 무역전쟁까지 겹치면서 지난해 10~12월 실적 전망치를 대폭 하향 조정했다. 15년 만에 매출 전망치를 낮췄다는 소식에 주가가 시간외 거래에서 7.5% 폭락해 시가총액이 순식간에 550억달러(약 62조원)나 증발하고 ‘애플 위기설’이 확산됐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가 2일(현지시각)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분기 매출 전망치를 기존 890억~930억달러(약 100조3천억~104조8천억원)에서 840억달러(약 94조7천억원)로 낮췄다고 보도했다. 애초 전망치보다 5~9%나 줄인 것이다.
쿡 최고경영자는 “주요 신흥시장에서 몇 가지 도전은 예상했지만, 중국 등 중화권 경제의 감속 규모를 예측하지 못했다. 아이폰, 맥, 아이패드 모두에 걸친 매출 감소의 대부분은 중화권에서 발생했다”고 밝혔다.
연간 판매 아이폰 약 2억대 중 5천만대가 팔리는 중국은 애플에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애플이 고전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애플 쪽 설명대로 중국 경제 성장세 둔화가 꼽힌다. 지난해 3~4분기 경제 성장률은 6.5%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았다. 소비도 15년 만에 가장 저조한 증가율을 나타냈다.
화웨이·샤오미·오포·비보 등 중국 브랜드의 급성장도 중요한 요인이다. 애플은 가격 이점을 내세우는 중국 업체들에 맞서 고가·고급 전략을 구사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과 마케팅이 외국 업체들을 밀어내고 있다. 아이폰의 중국 스마트폰시장 점유율은 2015년 12.5%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1~3분기에 7.8%로 축소됐다.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이미 1% 밑이다.
3일 오후 중국 베이징의 한 애플 매장에서 시민들이 전시된 신형 아이폰을 살펴보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설상가상이 됐다. ‘반미’ 정서 확산에 불매운동 얘기가 나올 정도로 중국 소비자들이 아이폰을 더 멀리하고 있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업체이자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멍완저우가 지난달 1일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체포된 것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저장성의 한 신소재 업체는 “애플 제품을 사면 승진을 제한한다”고 했고, 허난성의 한 관광지는 화웨이 스마트폰을 보여주면 입장료를 받지 않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애국주의’ 분위기 속에 지난해 9월 출시된 아이폰 신제품 판매도 신통찮았다. 중국의 아이폰 조립 공장을 베트남 등지로 이전한다는 설까지 퍼졌다.
게다가 지난달 푸젠성 지방법원이 애플이 반도체 업체 퀄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아이폰 구형 기종들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애플은 특허가 문제 되는 것을 피하려고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 판매를 재개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8월 미국 상장사 최초로 시총 1조달러를 돌파하고 10월에는 1조1천억달러(약 1240조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에 내리막길을 걷다가 이번 ‘실적 파문’까지 겹쳐 시총이 7000억달러 아래로 주저앉았다. 전문가들은 2019년 아이폰 판매량이 전년보다 10%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애플의 고전은 중국 소비시장의 힘을 새삼 일깨워준다. <블룸버그> 등 일부 미국 언론들은 무역전쟁은 미국 업체에도 큰 출혈을 요구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화살을 돌렸다.
옥기원 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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