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1년 다그 함마르셸드 당시 유엔 사무총장을 숨지게 한 비행기 사고의 관련 용의자로 다시 부각된 벨기에계 영국 공군 출신의 용병 비행사 얀 판리세험.
1961년 다그 함마르셸드(당시 56) 유엔 사무총장의 목숨을 앗아간 비행기 추락 사고는 벨기에가 지원하는 반군을 위해 일하는 벨기에 출신 조종사가 저질렀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올해 선댄스영화제에 출품된 <미제 사건, 함마르셸드>의 제작진이 벨기에 출신 용병 비행사 얀 판리세험을 격추범으로 지목했다고 <가디언>이 12일 보도했다. 스웨덴 외무장관 출신으로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함마르셸드는 1961년 9월 카탕카 반군을 만나 콩고 내전 종식을 중재하려고 비밀 출장을 가던 중이었다. 판리세험은 콩고로부터 독립을 추구하던 카탕가 지역 반군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당시 벨기에와 영국 등은 독립한 콩고의 자원 지대인 카탕가의 분리 독립을 지원하고 있었는데, 함마르셸드가 이를 반대하다 목숨을 잃었다는 주장이 그동안 설득력 있게 제기돼왔다. 판리세험은 사건 직후부터 용의자로 거론됐으나, 당시 비행 기록 등을 알리바이로 내민 바 있다.
그러나 <미제 사건, 함마르셸드> 제작진은 판리세험의 친구들과의 인터뷰와 비행 기록 조사를 통해 그가 함마르셸드가 탄 비행기를 격추시켰다고 밝혔다. 사건 뒤 벨기에로 귀국한 판리세험은 1965년 친구에게 격추 명령을 실행했을 뿐 누가 탄 비행기인지는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친구는 판리세험이 기술적 난관을 극복하고 격추 임무 수행에 성공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전했다. 판리세험은 “인생에서는 때로는 원치 않는 일을 해야만 하나, 그것은 명령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다큐는 판리세험이 당시 비행을 하지 않았다는 기록은 조작됐다고 밝혔다. 그의 카탕가 반군 용병 조종사 동료는 판리세험의 비행 기록에 나오는 부조종사 등은 허구의 인물이며, 그가 한달간 비행을 하지 않다가 사건 이틀 뒤에야 비행을 했다는 것은 조작이라고 단언했다. 벨기에 태생인 그는 2차대전 때 망명해 영국 공군에서 복무하다가 퇴역한 뒤 아프리카에서 용병으로 일했다.
다그 함마르셸드 전 유엔 사무총장. 콩고에서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그는 사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유엔 사무총장 재직시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해, 서방 국가들로부터 견제의 대상이 됐다.
그는 당시에도 콩고 주재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서 용의자로 지목됐다.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도 함마르셸드의 죽음 이틀 뒤 기자들에게 “그들이 그를 죽였을 때 그는 뭔가를 완수하려던 시점이었다”, “내가 ‘그들이 그를 죽였을 때’라고 말한 것을 주시하라”며 조직적 암살 공작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당시 함마르셸드는 벨기에로부터 콩고의 완전한 독립을 추진중이었다. 이는 콩고의 풍부한 자원에 이해관계를 지닌 벨기에 및 영국 등 유럽의 식민 모국, 특히 벨기에광업회사, 그리고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독립국가 수립에 반대하던 당시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정권의 격렬한 반대를 야기했다. 남아공 백인 정권 몰락 뒤 진실화해위원회에 제출된 정보기관 자료에는 “다그가 골치 아프게 하고 있다. … 제거돼야만 한다”는 앨런 덜레스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진술도 담겨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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