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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정의길 칼럼] 하노이, ‘가장 뜨겁고, 추운 전쟁’이 만나는 곳

등록 2019-02-11 17:51수정 2019-02-12 11:42

미국이 ‘가장 뜨거운 전쟁’을 벌인 베트남이 ‘가장 추운 전쟁’인 한국전쟁을 끝내는 지정학적으로 최적의 장소일 수 있을지 지켜보자. 한국전쟁과 함께 아프간전쟁 등도 종결된다면 미국의 대외정책과 세계질서는 큰 획을 긋는 것이다.

한국전쟁은 미국이 건국 이후 치른 수많은 전쟁 중에서 여러가지 기록을 경신한 전쟁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첫째, 미국이 가장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한 제3국의 전쟁이다. 북한군의 침공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 만인 1950년 6월27일 해리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미군의 파병을 명령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6월30일에 일본 주둔 미 지상군의 파견이 시작됐다. 전쟁 발발 열흘 만인 7월5일에 오산에서 24보병사단의 스미스 전진 분견대 540명이 북한군과 교전했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노점상에 지난달 29일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 미국 성조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하노이 / AP 연합뉴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의 노점상에 지난달 29일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 미국 성조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하노이 / AP 연합뉴스
1990년 8월2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쿠웨이트를 점령하며 발발한 걸프전에서도 미국은 닷새가 지나서 사우디아라비아 방위에 목적을 둔 방어적인 ‘사막의 방패 작전’을 천명했다.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군을 패퇴시키려는 군사력 파견과 구축에는 여러 달이 걸려 5개월 뒤인 1991년 1월18일에 본격적인 군사공세를 시작했다.

둘째, 미국이 건국 이후 치른 전쟁 중 승리하지 못한 첫 전쟁이었다. 첫 전투인 오산 전투에서 180명이나 전사하고, 본대가 합류한 24사단도 대전 전투에서 무려 3600명이 전사하고 3000여명이 포로가 됐다. 그중에는 사령관 윌리엄 딘 소장도 포함됐다. 단일 전투로서 미군이 치른 희생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건국 이후 모든 전쟁에서 승승장구했던 미국은 이 전투가 말해주듯이 한국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중국의 개입으로 전쟁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은 정전협정을 맺고 서둘러 전쟁에서 빠져나와야만 하는 선택을 했다.

셋째, 이 때문에 한국전쟁은 미국이 치른 전쟁 중 종결을 보지 못한 첫 전쟁으로 남아 있다. 현재, 미국의 입장에서 종결을 보지 못한 전쟁으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반‘이슬람국가’(IS) 전쟁이 더 있다.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공격은 공산주의가 독립된 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해서 (체제) 전복을 넘어서 무력침공과 전쟁을 사용할 것임을 의심의 여지 없게 만들었다”며 한국전쟁 참전을 ‘공산주의 침공에 맞서는 자유세계 수호’로 천명했다. 이 결연한 전쟁은 곧 미국에 이에 관한 최고의 탐사보도물인 제임스 브래디의 책 제목처럼 ‘가장 추운 전쟁’으로 바뀌었고, 나중에는 ‘잊혀진 전쟁’으로 귀결됐다.

한국전쟁은 그 후 미국이 직면할 전쟁들의 운명을 예고했다. 미국의 전쟁 수행에서 관건이던 압도적 화력 등 물량전은 미군이 처음 직면하는 한국의 산악지대와 추운 기후 앞에서 통하지 않았다. 그 뒤 전쟁이 벌어진 베트남의 더운 밀림, 이라크와 아프간의 광막한 사막은 더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앞서 치른 전쟁의 조건이던 허약한 교전 상대(1차대전 이전)나 이념적 우위에 바탕한 우월한 동맹구도(1·2차 대전)가 작동하지 않았다. 한국전,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간전 모두에서 교전 상대들은 미국을 압도하는 이념적 확신과 전쟁 수행 의지를 갖췄고, 미국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는 전쟁의 정당성 논란에 시달렸다. 그 결과 이 전쟁들은 모두 미국에 퇴각과 패전을 안겼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북한이 합의한 한국전쟁 종전선언이 이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결실을 볼 수 있을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미국이 자신에게 첫 패전을 안긴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보지 못한 전쟁의 교전국인 북한과 종전선언을 구체화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징은 크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여전히 미종결로 남아 있는 아프간전쟁 및 이슬람국가 격퇴전의 종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프간전쟁은 현재 미국이 탈레반과 평화협상을 벌이고 있고, 이슬람국가 격퇴전은 이슬람국가 잔당의 격퇴가 눈앞에 있다.

2차대전 이후 겪은 전쟁에서의 퇴각과 패전이 미국에 영원한 것도 아니었다. 베트남전이 베트남과의 국교정상화로 완전히 종결되자, 베트남은 이제 미국의 중국 봉쇄에 가장 중요한 나라로 떠올랐다. 이를 바라보는 중국의 심기는 결코 편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전쟁과 함께 아프간전쟁 등이 종결된다면 미국의 대외정책과 세계질서는 큰 획을 긋는 것이다.

미국이 ‘가장 뜨거운 전쟁’을 벌인 베트남은 ‘가장 추운 전쟁’을 끝내서 ‘가장 따뜻한 종전’을 끌어낼 수 있는 지정학적으로 최적의 장소일 수 있을지 지켜보자.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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