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상대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시리아 내 쿠르드족 장악 지역에 대한 터키의 공격이 벌어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이 터키에 이번 공격의 길을 터줬고, 이는 미군의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도움을 준 쿠르드 동맹을 미국이 ‘토사구팽’한 것이라는 비판에서다. 미국의 경제적 이득을 최우선에 내세우며 동맹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개의치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에 여당 안에서도 반발이 거세지만, 오히려 그는 이번 사태로 ‘불개입·고립주의’ 노선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안팎의 비판을 의식한 듯 9일 오전 성명을 내어, 터키의 시리아 공격에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묵인’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는 성명에서 “미국은 이 공격을 지지하지 않고, 이 작전은 나쁜 생각이라고 터키에 분명히 해왔다”고 밝혔다. 그는 터키가 민간인과 종교적 소수집단 보호 등을 약속했다고 환기하면서 “우리는 터키가 이 모든 약속을 지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정치 영역에 들어온 첫날부터 이러한 끝없고 무분별한, 특히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해왔다”고 불개입주의를 거듭 강조했다. ‘미군이 돌아온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터키의 시리아 공격은 방조하는 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진 다른 행사에서 이런 태도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쿠르드족은 미국이 이슬람국가를 격퇴하는 걸 도왔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오늘 누군가 매우 강력한 글에서 썼듯이, 그들은 2차 세계대전 때 우리를 돕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들은 노르망디에서 우리를 돕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게다가 우리는 탄약, 무기, 비용의 측면에서 쿠르드족을 돕는 데 엄청난 돈을 썼다”고 말했다. 대외정책도 철저히 대가·비용이라는 실리적 관점으로 접근하는 부동산 사업가 출신다운 시각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의 경찰이 되지 않겠다’는 입장도 되풀이했다. 그는 “우리 군대는 지금보다 더 강한 적이 없지만 지금은 경찰 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는 7000마일(1만1200㎞) 떨어져 있다”며 유럽연합 등 각자가 해야 할 일을 미국이 대신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한국과 유럽연합 등 동맹에 방위비 분담금 대폭 인상을 압박하는 모습 그대로다.
이런 태도에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날 여러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 임기에서 가장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시리아 철군 결정을 바꿀 것을 주장했다. 그는 지난 7일 트위터에 “쿠르드족을 버림으로써 우리는 가장 위험한 신호를 보냈다. 바로 미국은 못 믿을 동맹이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도 위험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게 시간문제가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과 손잡고 터키에 대한 초강력 제재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에이피>(AP) 통신은 “이란, 북한, 중국,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트럼프의 갑작스러운 정책 전환은 친구와 동맹을 좌절시키고 소외시켰다”며 “‘미국 우선주의’가 실제로는 ‘미국 홀로’를 뜻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정에 많은 칭찬을 받고 있다”며 시리아 철군과 ‘미국 우선주의’를 고수할 뜻을 명확히 했다. 그는 ‘터키의 시리아 공격을 허용함으로써 앞으로 필요할 때 동맹 발전이 어려울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을 거다. 동맹은 매우 쉽다”고 답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