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뉴햄프셔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연설하기 위해 입장하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맨체스터/AFP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진보 쪽의 ‘원톱’으로 질주하자, 민주당 주류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선에서 샌더스를 누르고 본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까지 깰 수 있는 중도성향의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억만장자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에게 민주당 주류의 눈길이 모아지고 있다고 미 언론들이 12일 보도했다.
미 의회 내 흑인 의원 모임인 블랙코커스 소속 의원 3명은 이날 블룸버그 지지를 선언했다. 이 모임의 다수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지지해왔으나, 바이든이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 경선에서 잇따라 추락하자 기류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그레고리 믹스 하원의원은 블룸버그 지지 이유에 대해 “나와 이념적으로 맞는 후보들이 여럿 있지만, 당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보다 블룸버그의 당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는 얘기다. 지난해 바이든 지지를 선언한 루 코레아 민주당 하원의원은 <폴리티코>에 “블룸버그로 모멘텀이 이동하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는 샌더스의 약진을 불편해하는 당내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민주당 주류는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인 샌더스의 지지층 확장성이 떨어져 11월 대선에서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는 사회주의 꼬리표를 붙여 공격하기 쉬운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되기를 원하는 듯한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또 대선 날 연방 상원·하원 의원 투표도 함께 하는데, 샌더스가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민주당의 다른 후보들에게까지 부정적 표심이 ‘줄투표’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당내에서 제기된다.
바이든 추락 이후 중도 대표선수로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과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떠올랐지만, 중앙 정치 경험 부족이나 소수인종 지지라는 확장성 부족 등의 지적이 따르고 있다. 이에 비해 블룸버그는 중도성향이면서도 막강한 자금력과 인지도를 갖고 있다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2월 경선지들을 포기한 채 14개 주 경선이 동시에 열리는 3월3일 ‘슈퍼 화요일’에 주력하고 있는 블룸버그도 ‘바이든 추락’과 ‘중도 대안 모색’의 틈을 공세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날 테네시주 유세에서 “우리는 혁명(revolution)이 필요한 게 아니라 진화(evolution)를 원한다”며 샌더스의 진보 노선을 비판했다. 블룸버그 캠프의 하워드 울프슨 선임보좌관은 이날 내부 회의에서, ‘슈퍼 화요일’ 경선지들에서 블룸버그가 샌더스를 근소하게 앞서며 1위를 하고 있고, 흑인 지지율에서는 바이든과 동률이라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하지만 블룸버그의 위험요소도 적지 않다. 그가 뉴욕시장 재직 시절 시행한 불심검문 정책과 관련해, 2015년 “진짜 범죄들은 대부분 남성 소수인종이 저지른다”고 말했던 녹음 파일이 최근 터져 나와 인종주의 논란이 재점화됐다. 블룸버그는 이날 “그 말들은 내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다양성 높은 도시를 어떻게 운영했는지를 반영하지 않는다”며 사과했다. 블룸버그가 다른 주자들과 텔레비전 토론에 서본 적이 없는 점도 지켜볼 대목이다. 그는 오는 19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첫 합동 토론에 등장한다. ‘억만장자가 돈으로 선거를 사려 한다’는 당 일각의 냉소적 시각도 여전하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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