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19일(현지시각)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주자 합동 토론회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지난해 11월 대선 출마 이후 처음으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다른 주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라스베이거스/EPA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19일(현지시각) 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파리호텔카지노에서 열린 합동토론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다. 네바다주 코커스(당원대회·22일) 사흘 앞이자, 14개 주에서 무더기 경선을 치르는 슈퍼화요일(3월3일)을 2주 앞두고 열린 토론에서 6명의 주자는 사활을 건 듯, 지난 8차례와는 확연히 다르게 서로를 격렬하게 물어뜯었다. 특히 최근 지지도 상승세 속에 이날 토론 첫 등판으로 관심을 모은 마이크 블룸버그(78) 전 뉴욕시장은 예상된 집중 공격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패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토론은 시작부터 나머지 5명의 ‘블룸버그 때리기’로 진행됐다. 블룸버그가 뉴욕시장 시절 시행해 소수인종 차별 논란을 낳은 불심검문 정책을 비롯해, 임신한 직원에게 “애 지워!”라고 하는 등의 여성 차별·혐오 발언 전력, 공화당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지지 경력, 소득신고서 미제출 등이 다 소환됐다. 엘리자베스 워런(70) 상원의원은 “여성들에게 ‘말 같은 얼굴을 한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억만장자에 대해 말하고 싶다. 도널드 트럼프 얘기가 아니라, 블룸버그 얘기”라며 피해 여성들과 맺은 비공개 합의를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블룸버그가 “당사자간에 조용히 하기로 합의한 것”이라며 공개하지 않겠다고 하자 방청석에서는 야유가 나왔다.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들이 19일(현지시각) 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파리호텔카지노에서 열린 합동토론에서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 라스베이거스/EPA 연합뉴스
아이오와주 코커스(2월3일)와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11일)에서 초라한 성적으로 대세론에 상처를 입은 조 바이든(77) 전 부통령은 “블룸버그는 500만명에 가까운 흑인 청년들을 벽에 세우는 불심검문을 했다”고 몰아붙였다. 바이든은 블룸버그가 최근 강력하게 흡수해온 중도 표심을 빼앗아와야 하는 처지다. 블룸버그는 “나타난 결과를 보고 가장 당황스러운 게 불심검문”이라며 유감을 나타냈으나 워런은 “결과가 아니라 어떤 의도로 만들었느냐가 중요하다”며 “진정한 사과”를 촉구했다.
블룸버그는 소득신고서를 아직 제출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추궁에 “(신고서 작성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몇 주 안에 최대한 빨리 내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연장근로 수당 줘서 빨리 끝내라”(워런)는 핀잔과 방청석의 야유를 받아야 했다.
블룸버그가 텔레비전 토론에 나선 것은 뉴욕시장 출마 때인 2009년 이후 11년 만이다. 미 언론은 블룸버그가 뻔히 예상됐던 공격들에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했다면서 “블룸버그에게 끔찍한 밤… 거품이 터졌을 수도 있다”(<더 힐>)고 짚었다.
아이오와·뉴햄프셔의 여세를 몰아 전국 지지율 1위로 날아오른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78) 상원의원을 둘러싸고는 ‘사회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토론 진행자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3분의 2는 사회주의자 대통령을 불편하게 여긴다’고 묻자, 샌더스는 그 조사에서 자신의 지지율이 1위였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나는 억만장자가 아닌 일하는 사람을 위한 민주적 사회주의를 믿는다”고 받아쳤다.
블룸버그는 이를 낚아채 “가장 잘 알려진 사회주의자가 우연치 않게도 집 세 채를 가진 백만장자”라고 비꼬았고, 샌더스가 “당신 집은 어디냐”고 맞서며 서로 날카로워지기도 했다. 샌더스는 이밖에 ‘전국민 건강보험’의 재원 마련 방안이나, 극성 지지자들의 다른 후보에 대한 공격 행태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샌더스는 블룸버그에 공격이 집중된 토론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반사이익을 본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제기된 공격들도 공세적으로 반격해, 최근의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는 게 미 언론의 대체적 전망이다.
워런은 샌더스와 함께 이날 토론의 ‘승자’로 꼽힌다. 그는 블룸버그뿐 아니라 모든 주자를 매섭게 몰아세워 ‘왕년의 실력이 되살아났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워런은 건강보험 정책과 관련해 “부티지지 공약은 얇은 파워포인트이고, 에이미 클로버샤(59) 상원의원의 공약은 포스트잇처럼 훨씬 적다”고 조목조목 지적했다. 다만 샌더스에게 실리고 있는 진보 표심을 빼앗아 오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게 그의 과제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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