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슈퍼 화요일’ 경선이 치러진 3일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볼드윈 힐스 레크리에이션센터’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UPI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최대 승부처로 꼽힌 ‘슈퍼화요일’의 주인공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었다. 지난달 아이오와주(4위), 뉴햄프셔주(5위), 네바다주(2위)에서 처참한 성적을 내며 미 정가와 언론에서 “끝났다”는 평을 들어온 바이든은 3일(현지시각) 밤 텍사스 등 10개 주에서 승리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미 언론이 일제히 ‘놀라운 컴백’이라고 외친 바이든의 대반전은 지난 사흘 사이 이뤄진 중도파 결집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그 바탕에는 진보 노선을 주창하며 선두를 달려온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막아야 한다는 민주당 주류와 다수 지지층의 ‘반샌더스’ 정서가 깔려 있다.
바이든은 흑인 인구 비율이 약 30%에 이르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지난달 29일 압도적 1위를 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를 계기로 같은 중도 노선의 피트 부티지지 전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과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이 경선을 포기하고 슈퍼화요일 바로 전날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바이든을 중심으로 한 중도 연대가 급속히 이뤄졌고, 이것이 바이든 대약진의 기폭제로 이어진 것이다. 클로버샤의 한 참모는 “우리는 모든 자원을 바이든을 돕는 쪽으로 돌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투표한 상당수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막판에 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텍사스의 경우, <시엔엔>(CNN)은 출구조사에서 바이든을 지지한 유권자의 49%가 ‘최근 며칠 사이’ 마음을 정했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텍사스는 대의원 228명으로, 이날 경선지들 가운데 캘리포니아(415명)에 이어 두번째로 규모가 큰 곳이다. 유권자들은 또 자신의 가치에 맞는 사람보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텍사스에서 바이든을 지지한 이들의 39%가 이런 ‘당선 가능성’을 첫째 기준으로 꼽았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로는 11월 본선에서 트럼프를 꺾을 수 없다고 다수 민주당 지지자들이 여긴다는 얘기다.
5억달러 이상을 광고비로 쏟아부으며 슈퍼화요일에 집중해온 마이클 블룸버그가 바이든의 표를 크게 잠식하지 못한 점도 ‘바이든 몰아주기’ 현상을 보여준다. 블룸버그는 미국령 사모아에서 1위를 한 것 외에 다른 주들에서는 3위 아래로 밀렸다. 그는 부진한 성적표가 나오자 4일 오전 경선 포기와 함께 바이든 지지를 선언했다.
바이든은 이날 경선에서 흑인들의 높은 지지 또한 재확인했다. 바이든이 이긴 노스캐롤라이나, 앨라배마 등 남부 주에서 흑인 비중은 25%를 넘는다. <더 힐>은 앨라배마 출구조사에서 흑인 유권자의 70%가 바이든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바이든은 이날 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한 연설에서 “좋은 밤이고, 훨씬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괜히 슈퍼화요일이라고 부른 게 아니다”라며 승리를 자축했다. 그는 “혁명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는 운동(movement)을 시작했다”고 샌더스와 각을 세웠다.
샌더스는 버몬트에서 한 연설에서 바이든을 겨냥한 듯 “똑같은 낡은 정치로는 트럼프를 꺾을 수 없다”며 “노동자 계층과 젊은이들을 정치운동으로 불러들이는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경선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체 대의원의 약 34%의 향배가 정해졌다. 대체로 슈퍼화요일에 유력 주자 윤곽이 잡혀왔지만 이번에는 ‘진보 샌더스 대 중도 바이든’의 양강 구도를 되살리며 오히려 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미시간 등 6개 주 경선이 치러지는 10일과 플로리다 등 4개 주 경선이 열리는 17일 등 몇차례의 경선을 거쳐야 승자 윤곽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을 갖춘 블룸버그의 바이든 지지 선언으로 바이든 상승세가 한층 탄력을 받게 돼, 그 기간이 단축될 수도 있다. 샌더스와 함께 진보 주자의 양대 축을 이뤄온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슈퍼화요일의 부진 이후 어떤 선택을 할지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6월까지 대의원 과반수(1991명)를 확보하는 주자가 없을 경우, 7월 전당대회에서 의원 등으로 이뤄진 ‘슈퍼대의원단’(771명)이 캐스팅보트를 쥐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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